"언제까지 멍하니 있을 순 없어 문은 열었지만... 이렇게 영업을 해도 되나 싶네요.”
10일 낮 12시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인근 브런치 가게 직원 이모(34)씨 얼굴엔 그늘이 가득했다. 평소 같으면 긴 대기줄이 생길 시간이지만, 가게 안에는 외국인 손님 단 두 팀뿐이었다.
참사 후 2주 가까이 지났다. ‘국가애도기간’은 닷새 전 일찌감치 끝났고, 국내 희생자들의 장례 절차도 다 마무리됐다. 그러나 이태원 거리는 여전히 적막했다. 이태원 대로에서 불과 50m 떨어진 세계음식문화거리는 이날 낮 영업하는 상점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텅 빈 골목에는 미처 치우지 못한 쓰레기와 전단만 바닥에 나뒹굴었다.
5일 국가애도기간 종료 뒤 영업을 재개한 상인들은 요즘 죄책감에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세계음식문화거리의 한 가게 직원 이모(51)씨는 “참사 현장을 목도하고도 인파 때문에 접근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던 상인들 모두 스스로를 죄인으로 여기고 있다”며 “문은 열었지만 장사를 해야겠다는 의욕이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이태원역 인근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김모(41)씨 역시 “하루에도 수십 번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미안함으로 마음도 무거운데, 손님 발길이 뚝 끊긴 탓에 상인들은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횟집을 운영하는 유모(40)씨는 “생선은 반나절이 지나면 다 버려야 해 (애도기간) 100만 원어치를 폐기했다”고 말했다. 다시 영업에 나섰지만 손해를 회복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그는 “매출이 반토막도 아니고 80% 이상 줄었다”면서 “크리스마스와 연말 특수도 물 건너갈 게 뻔해 이러다 이태원 상권이 아예 사라질까 두렵다”고 털어놨다. 주점 주인 김씨는 “이태원은 월세가 500만~1,000만 원대로 비싼 편이라 하루 장사를 공치면 감당하기가 어렵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거리두기 해제’ 효과를 기대했던 특정 업종 상인들의 상실감도 크다. 참사가 발생한 해밀톤호텔 인근에서 패션잡화점을 운영하는 박모(56)씨 부부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풀리면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돌아올 것으로 예상해 수천만 원을 들여 물건을 구매했다. 부부는 “재고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하다”며 “이태원이 아예 참사 장소로 낙인찍힐 것 같아 괴롭다”고 호소했다.
그래도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법. 슬픔을 딛고 일어서겠다는 의지가 곳곳에서 엿보였다. 뮤직바 주인 최모(32)씨는 “누구보다 가까이서 참사를 지켜봐 너무 마음이 아프다”면서도 “빨리 생활이 정상 궤도를 찾아야 슬픔을 애써 삼키는 상인과 이태원을 사랑하는 시민들이 서로를 위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