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관 속으로

입력
2022.11.1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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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핼러윈 참사' 사흘 뒤인 지난 1일, 경찰청은 이례적으로 사고 당일 112 신고 녹취록을 공개했다.

참사 4시간 전부터 다급한 호소가 이어졌지만 경찰이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특히 압사 위험 신고가 11건 접수됐는데 7건은 현장에 가보지도 않고 상담만으로 종결했다는 발표에 사람들은 분노했다. 10년 전 오원춘에게 끌려간 여성이 112로 전화를 걸어 장소까지 어느 정도 특정했는데도 "거기가 어디냐"고만 묻다가 참극을 막지 못한 사건을 떠올린 이도 적지 않았을 거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같은 날 기자회견에서 "다수의 112 신고가 있었는데 현장 대응이 미흡했다"며 고강도 감찰을 지시했다.

그러나 경찰청 발표 뒤 지구대와 파출소 등 일선 경찰들은 '7건 미출동'은 사실과 다르다고 항변했다. 특정 시간을 기점으로 2~5분 간격으로 들어온 비슷한 신고를 한꺼번에 묶어 현장에 나가 조치했고, 서류상에만 '1건 출동, 3건 상담 종결'로 기록됐단 설명이었다.

서울경찰청 상황실을 총괄하는 총경급 간부 A씨도 똑같은 주장을 했다. 그는 "신고를 받고 출동을 안 한 건 절대 아니다"며 "이런 저간의 사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비난이 너무 크다"고 호소했다. 한국일보는 경찰 발표 다음 날 이런 내용을 기사에 담았다.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한국 치안을 총괄한다는 경찰청은 정확한 사실 관계를 파악하지도 않고 저런 발표를 한 걸까.

A총경에게 물었다.

"경찰청에도 상황실 책임자가 있지 않나요?"

"네. 있죠."

"그럼 당연히 출동 전반에 관한 이런 과정을 다 알고 있지 않나요?"

"네. 어느 정도 알죠."

"그런데도 11건 중에 4건만 출동했다는 식으로 발표한 건가요?"

"…"

결국 경찰청은 엿새 뒤인 지난 7일 기존 발표를 뒤집었다. "당초 11건 중 7건은 현장에 출동하지 않은 것으로 보도됐으나 참사 당일 근무일지와 근무자들의 진술을 종합하면 '상담안내'로 종결 처리한 건은 출동하지 않은 건 아니라고 판단한다"는 해명자료를 냈다.

'출동하지 않은 건 아니라'는 복잡한 수사를 보며 쓴웃음이 났다. '11건 중 7건은 현장에 출동하지 않은 것으로 보도됐다'며 언론 뒤에 슬쩍 숨는 '유체이탈' 화법은 처연하기까지 하다. 변명이 길어질수록 말이 꼬이는 법이다.

현장 경찰 책임을 부각해 '꼬리자르기'를 하려다 지휘부 동선이 낱낱이 공개되면서 여론이 나빠지자 말을 바꾼 거란 의심이 드는 건 당연하다. 반대로 정말 몰랐다면 현장 근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지휘부가 까맣게 모르고 있다는 걸 자인하는 꼴이 된다.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3년 차 여경이 2019년에 펴낸 '경찰관 속으로'란 책에 이런 대목이 있다.

'젊은 경찰관이여, 조국은 그대를 믿노라. 경찰관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한 문장이야. 중앙경찰학교에도 이 문장이 큼지막하게 설치되어 있었는데, 처음 그 문장을 바라보며 달리기를 할 때 벅찼던 가슴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지만, 지금 나는 이 문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어…'

이 책의 속표지엔 '경찰, 관 속으로'라고 제목이 달리 인쇄돼 있다. 윤희근 청장과 지휘부들이 부디 이 의미를 곱씹어 봤으면 한다.

윤태석 사건이슈팀장 sportic@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