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성 담론이 소재가 된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는 고지식한 큐레이터 샬롯 요크가 '래빗'이라는 이름의 자위기구에 푹 빠지는 내용의 '토끼와 거북(The Turtle and the Hare)' 편이다. 이 드라마로 은밀하고 사적인 영역에 머물러 있던 여성 자위기구가 공론화된 게 불과 20여 년 전이다. 1960~1970년대만 해도 여성은 성적 욕망이나 쾌락을 말해서는 안 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신간 '바이브레이터의 나라'는 미국의 여성 대상 성산업을 페미니즘 관점으로 돌아본다. 애머스트 매사추세츠대에서 성(性)·젠더 분야 교수로 재직 중인 린 코멜라는 여성의 성적 욕구를 부정하지 않는 '성 긍정(sex-positivity)'에 기초한 섹스토이숍 창업의 역사를 추적한다. 저자는 기존의 남성 중심적 점포와는 다른 형태의 성인용품점 창업자들을 인터뷰해 섹스토이숍의 사회 변혁 도구로서의 맥락을 살핀다.
델 윌리엄스는 페미니스트 베티 도슨의 워크숍에서 영감을 얻어 1974년 미국 최초의 여성 섹스토이숍 '이브스가든'을 창업했다. 조아니 블랭크가 1977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한 '굿바이브레이션스'는 젠더, 성적 지향, 인종, 계급 등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편안하고 안전한 섹스토이숍을 표방했다. 레이철 베닝과 클레어 캐버너가 '굿바이브레이션스'의 성교육 중심적 사업 모델을 모방해 1993년 시애틀에서 창업한 '베이브랜드' 등이 등장하면서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는 소매업 기반의 성교육이 대중화됐다. 저자는 이들을 '페미니스트 섹스토이숍'이라고 칭하면서 "페미니즘 정치학과 시장 문화, 사회운동과 자본주의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직접 보여줬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