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오른팔’인 정진상 당대표 정무조정실장에 대한 9일 검찰 압수수색이 실시된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청과 민주당 중앙당사는 벌집을 쑤신 듯 발칵 뒤집혔다. 검찰은 대장동 개발 사업자들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정 실장을 수사하고 있다.
이날 오전 8시 40분쯤 검찰 관계자들은 국회 본청에 있는 정 실장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기 위해 본청 후문 민원실 앞에서 대기했다. 국회 본청에 대한 압수수색은 이례적이다. 검찰 직원들은 출입 등록 절차를 마친 뒤 출입증을 받아 김진표 국회의장을 만나기 위해 먼저 국회의장실로 향했다.
국회의장에게 압수수색을 허락하거나 막을 권한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검찰은 입법부의 상징성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의장을 면담한 것으로 보인다. 오전 9시쯤 조경호 국회의장 정무수석이 김 의장을 대신해 검찰 관계자들은 만나 김 의장 입장을 전했다. 김 의장은 "법 집행을 엄정하게 해야 한다는 것은 원칙에는 동의하지만 의장으로서 국회 본청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을 고려할 때 임의 제출 형식으로 진행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전달했다. 검찰 관계자들은 이에 일단 물러나 오전 11시 현재 국회 1층 민원실 앞에서 대기 중이다. 상부에 김 의장 의견을 보고한 뒤 지시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 20여 명은 오전 8시 30분쯤 민주당사 정문 앞에 도착했다. 검찰의 민주당사 진입 시도는 지난달 24일 김용(구속기소) 민주연구원 부원장 혐의 입증을 위한 당사 내 민주연구원 사무실 압수수색 이후 17일 만이다.
민주당은 오전 9시쯤 당사 정문 셔터를 내려 검찰 진입을 막았다. 그러는 동안 조상호 민주당 법률부원장 등이 검찰 관계자와 대화를 나눴다. 정 실장 측 변호인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요구하는 한편, 압수수색 대신 임의 제출로 갈음이 가능한지 등을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간에 유튜버로 추정되는 인물이 검찰을 향해 "정치보복 그만하라"고 외쳤으나 그외의 충돌이나 소란은 없었다. 오전 11시 30분 현재 검찰 관계자들은 당사 앞에서 여전히 대기 중이다. 이 대표 측 관계자는 "정 실장은 오늘 당사나 본청에 나와 있지 않았다"고 전했다.
민주당은 오후 변호사 입회하에 검찰이 당사에 진입하는 것을 허용했다. 정 실장의 근무지가 국회 본청인 만큼 당사를 공개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들이 압수수색을 시도했던 국회 본청에서는 오전 9시 30분 이 대표가 참석한 최고위원회의가 열렸다. 이날 회의 주제는 '산업재해 없는 안전한 노동' 편이었지만 산재 문제에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침통한 표정의 이 대표는 공개발언에서 압수수색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대신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 대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국민 분향소에 희생자 영정을 두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당연히 유족이 반대하지 않는 한 이름과 영정을 공개하고 진지한 애도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숨긴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다시 촛불을 들고 해야 하느냐"고 뼈있는 말을 남겼다. 향후 본격적 장외투쟁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는 회의 직후 측근 수사에 대한 입장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침묵했다. 또 오전 10시에 잡혀 있던 중소기업·소상공인 유동성 위기 대응 토론회 참석을 취소하면서 대응책 마련을 고심하고 있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에서 "검찰은 야당 당사 침탈에 이어 국회까지 침탈하려 하고 있다"며 "검찰 독재 정권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윤석열 정부는 자제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안호영 수석대변인은 검찰의 압수수색 시도에 "명백하게 검찰의 과잉수사이자 정치 탄압, 보여주기식 수사라고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당사에 정 실장의 별도 사무실이 없고 근무한 적 없는 것을 모를 리 없는 검찰이 당사 압수수색을 청구한 것은 민주당에 대해 흠집을 내려고 하는 정치 쇼"라며 "이태원 참사로 국민적 분노가 상당히 큰데 참사로부터 국민의 시선을 돌리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