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을 위협하는 기후 위기에 당장 대응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촉구하는 시위가 누군가를 위험에 빠뜨린다면?'
독일이 최근 이런 논쟁으로 뜨겁다. 기후운동이 점점 더 과격해지던 중, 시위 영향으로 응급환자가 병원에 늦게 도착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해 회의론이 터져 나온 것. "기후 위기 심각성을 알리려면 과격한 방식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는 게 환경 운동가들의 굳은 신념이지만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사고가 일어난 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월요일 아침이었다. 독일 수도 베를린 남서쪽에 있는 도로 분데스알리에서 44세 여성 A씨가 자전거를 타던 중 대형 트럭에 치였다. 구조 트럭이 출동했으나 도로 입구를 독일 환경 단체 '라스트 제너레이션'이 막고 시위를 하고 있어 진입할 수 없었다.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해 속도 제한이 없는 독일 고속도로에 제한을 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 단체는 고속도로 진입로 또는 혼잡한 도로를 점거하는 시위를 반복적으로 진행해 왔다. 접착제를 활용해 바닥에 손을 붙여두기 때문에 해산도 쉽지 않았다.
A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흘 뒤 뇌사 판정을 받고 사망했다. 화살은 라스트 제너레이션에 쏠렸다. 활동가들이 도로를 막아 구조를 제때 하지 못한 것이 A씨 사망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베를린 수사 당국은 과실치사, 테러 등 다양한 혐의를 염두에 두고 이들에 대한 고강도 수사를 진행 중이다.
현재로서는 이 단체가 A씨 사망의 직접적 책임은 지지 않을 것 같다는 데 현지 언론들은 무게를 싣고 있다. 현장에 있던 응급 구조대가 '구조 트럭 진입 여부와 A씨 사망이 큰 관련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통사고 자체가 A씨를 사망에 이르게 할 정도로 심각했단 뜻이다.
사망 책임 여부와는 별개로, 독일 사회 내에서는 과격하고 때로는 법을 위반하는 이들의 시위 행태에 대한 비판도 커지고 있다. 환경 보호를 중시하는 녹색당 등 소위 '같은 편'도 과격 시위에 대해서는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부총리 겸 경제기후보호부 장관은 8일 "기후운동의 목적은 기후 그 자체가 아니라 지구에서의 품위 있는 삶이어야 한다"며 "시위가 생명을 위협하면, 시위 명분이 훼손된다"고 경고했다. 하베크 부총리는 다른 정당들보다 환경 보호를 중시하는 녹색당 공동대표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교통을 방해할 때 사람들은 기후 위기 심각성을 이해하는 게 아니라 시위에 짜증을 느낀다"고 충고했다.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독일 기독교민주연합∙기독교사회연합이 '도로 봉쇄가 소방∙경찰 등 차량 운행을 방해할 경우 최소 징역형을 부과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현지 언론 타게스샤우는 보도했다.
하지만 이런 비판에도 활동가들은 대중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면, 어느 정도의 피해를 입히는 건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맞서고 있다. 라스트 제너레이션은 과거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온건한 방식의 과거 시위는 모두 실패했다"고 했다. 이들은 A씨 사망에 애도를 표하면서도 최근 시위를 재개했다.
이런 이유로 과격한 시위는 전 세계에서 확산 중이다. 유럽에선 미술관에 걸린 명작과 공공시설에 감자샐러드, 토마토수프 등을 던지는 시위가 빈번하게 진행되고 있다. 빈센트 반 고흐, 클로드 모네 등 거장의 작품들이 망가질 뻔했다. 활주로에 앉아 비행기 이륙을 막는 시위도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