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일본 효고현 아카시시 불꽃축제 때 11명이 숨지고 249명이 부상한 사고가 발생했다. 좁은 통로가 인파로 꽉 막힌 상태에서 벌어진 압사 사고라는 점에서 10월 29일 이태원 참사와 꼭 닮았다.
제3자위원회의 조사 결과 사고 원인은 인파 통제 미비였다. 유족들은 아카시시와 효고현 경찰, 민간 경비회사 ‘니시칸’을 대상으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관련자 12명이 형사 기소됐고 이 중 5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이 순순히 책임을 인정한 건 아니다.
사고 발생 초기 “머리를 염색한 남성들이 무리하게 밀었다”, “보도교 지붕 위에 올라가 소란을 피웠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알고 보니 니시칸 사장이 책임 회피를 위해 지어낸 허위 사실이었다. 이 청년들은 지붕에 올라가 119 신고를 했고 군중을 향해 진입하지 말라고 외쳤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경찰에 책임을 묻는 과정도 지난했다. 고베지검은 사고 당시 경찰서 안에 있었다는 이유로 아카시경찰서장과 부서장을 기소하지 않았다. 유족들은 검찰심사회 심사를 세 번이나 신청, 모두 ‘기소 상당(기소를 해야 한다)’ 결정이 나왔지만 검찰은 아랑곳 않고 불기소를 고집했다.
2010년 법 개정으로 검찰심사회가 2회 이상 ‘기소 상당’을 의결하면 강제 기소되게 됐다. 그러나 서장은 2007년 세상을 떠났고, 재판정에 선 부서장은 “잘못은 서장이 했고 나는 보좌만 했다”고 변명했다. 법원은 경비 계획 미비로 사고가 발생했다고 인정했지만 부서장의 권한은 한정적이었다며 면소(免訴) 처리했다.
책임지려는 사람이 없는 건 이태원 참사도 마찬가지다. 참사 다음 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토끼 머리띠’니 ‘각시탈’이니 애먼 개인 탓을 하는 것도 비슷하다. 자국민을 5명이나 잃은 이란이 한국 정부 책임을 언급하자 외교부는 “결코 해선 안 될 말”이라며 되레 꾸짖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책임 회피에 급급했던 자들에게 인사권을 행사하지 않고 일선 경찰에만 호통친다.
사전에 충분한 경비 인원을 배치했다면, 첫 신고에 제대로 대처했다면 구할 수 있는 156명의 목숨이었다. 그런데도 정부에 내 탓 하는 사람이 이리도 없다는 데 분노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