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8일 '이태원 참사' 책임자 경질 요구와 관련해 "매번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장관이나 청장을 바꾸라는 것은 후진적이다"라고 밝혔다. 이날 국회 운영위원회의 대통령실 국정감사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 등에 대한 문책을 요구하는 야당에 "참사 원인부터 밝혀야 한다"고 선을 그으면서다. 국민의힘은 이 장관 등 내각이나 대통령실의 책임론을 부각하기보다 경찰의 부실 대응에 초점을 맞추며 김 실장을 엄호했다.
김 실장은 이날 국감에서 초동 대처를 포함한 경찰의 부실 대응을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전반적인 대응이 부족했다'는 야당 의원들의 잇단 지적엔 "어이가 없고 저도 이해가 안 된다"며 "밀집 인구를 분산하는 현장의 신속한 조치가 있었다면 참사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공감했다. 전날 "안전사고를 예방해야 할 책임은 경찰에 있다"고 경찰을 질책한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재강조한 셈이다.
김 실장은 다만 책임자에 대한 문책을 논의할 시기는 아니라고 못 박았다. '수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인사 조치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냐'는 야당 의원들의 질문에 "사람을 바꾸는 것도 중요할 수 있지만 그다음엔 어떻게 하시겠느냐"라고 반문하며 "(새 장관 임명을 위해) 청문회를 열면 세월이 또 흐르고 행정 공백이 생긴다. 지금은 사의를 논의할 때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김 실장은 '국무위원과 대통령실 참모 가운데 사의를 밝힌 인사가 있느냐'는 천준호 민주당 의원의 질문에는 "없었다"고 했고, '윤석열 대통령에게 직접 문책 인사를 건의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없다"고 답했다.
정부 공문서에 '사고' '사망자'라는 표현 대신 '참사' '희생자'라고 사용해야 한다는 야당의 요구에는 수용할 뜻을 밝혔다. 김 실장은 '사고' '사망자' 표현에 대해선 "재난안전법에 있는 법률적 용어를 중립적으로 쓰는 것"이라면서도 "그렇지만 저희도 참사, 희생자라는 말을 쓴다. 오늘 업무보고 인사말에도 저는 참사라고 쓰지 않았느냐"고 했다.
여야는 경찰의 부실 대응에는 한목소리로 비판했으나, 이 장관과 경찰 수뇌부 경질과 관련해선 확연한 온도 차를 보였다. 최기상 민주당 의원은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당시 이영덕 국무총리가 사의 표명을 했던 점을 거론하며 "(이상민 장관은) 수많은 잘못된 발언으로 (유가족들에게) 고통을 준 사람"이라며 "참사에 책임 있는 장관과 경찰 수뇌부 등이 그대로 있는데 진상 규명이 제대로 되겠나"라고 꼬집었다.
여당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대형 인명 사고 당시 장관이 유임한 사례를 들어 맞받았다. 서일준 국민의힘 의원은 2017년 12월 제천 스포츠타운 화재와 2018년 1월 밀양 세종병원 화재를 언급하며 "이때 행안부 장관이 김부겸 장관이었다. 김 장관이 책임을 지고 사퇴를 했었느냐"고 반문했다. 김 실장도 이에 "세월호 참사 때도 해양수산부 장관이 사태를 수습하고 8개월 후에 사퇴한 적이 있다"고 문책보다 수습이 필요한 시기임을 거듭 강조했다.
한편, 국감 도중 김은혜 홍보수석이 이태원 참사에 대한 야당 의원의 질의를 들으면서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의 수첩에 '웃기고 있네'라고 적은 뒤 지우는 장면이 언론에 포착되며 파행을 빚었다. 민주당 의원들은 "국회 모독"이라며 김 수석 등의 퇴장을 요구했다.
김 수석은 "물의를 빚어 죄송하다"면서 "국감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사적으로 오간 내용"이라고 해명했다. 강 수석도 "어제 일 가지고 사적으로 나눈 대화"라고 답했지만 구체적인 대화 내용에는 입을 다물었다.
진성준 민주당 의원은 "김 수석과 강 수석은 국감 증인으로 출석한 것"이라며 "어떻게 국감 질의 중에 사적 대화를 나누고 시시덕거릴 수 있느냐"고 성토했다. 이수진(비례) 민주당 의원은 "참사와 절절한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웃기고 있네'라고 적었다"며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대통령실 관계자들이 어떻게 인지하고 있는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의원은 메모가 언론에 포착되기 전에도 의사진행 발언을 신청, 야당 의원들의 질의를 듣는 대통령실 관계자들의 태도를 문제 삼으며 주호영 위원장에게 주의시킬 것을 요구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