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서장 입건, 헌신에 대한 모멸

입력
2022.11.08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2019년 강원 고성·속초 산불은 잘 대응한 재난으로 기억된다. 2005년 강원 양양 산불 등에 비해 조기 진화된 것은 지휘부가 신속히 판단해 전국 소방서를 동원한 덕분이었다. 시민들은 6시간 넘게 먼 길을 달려온 전남 해남 소방차를 보며 국가를 실감했고, 검댕이 묻은 채 지쳐 쓰러진 소방관의 모습에서 헌신을 느꼈다. 이후 소방공무원 국가직화 전환 여론이 비등해 당시 청와대 국민청원에 38만 명이나 동의했다.

□ 전국 동원을 뜻하는 대응 3단계는 이태원 참사 때도 발동됐다. 지난달 29일 밤 10시 15분 119 신고 접수 후 10시 42분 현장 구조대가 심폐소생술을 시작했고, 이후 약 1시간에 걸쳐 대응 수위가 1, 2, 3단계로 격상됐다. 142대의 구급차가 출동했다. 상황 전파도 소방청이 가장 부지런했다. 소방청 119상황실이 밤 10시 28분 서울시 재난통합상황실, 29분 용산구청 상황실, 48분 행안부 상황실, 53분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에 보고했고 윤석열 대통령에게 먼저(밤 11시 1분) 닿았다. 경찰과 지자체, 행안부의 보고-지휘 시스템은 먹통이라 할 만했다.

□ 꽃다운 156명의 목숨을 생각하면 물론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7일 경찰청 특별수사본부가 용산소방서장을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한 것은 납득이 어렵다. 자리를 비운 것도 아니고 머리 출혈 환자를 이송하고 온 용산소방서 구급차가 종로소방서 구급차보다 늦게 도착한 것 등이 입건 이유라니 황당하다. 대통령실 이전후 2, 3분기 용산서 교통과 초과근무시간이 전년보다 1만 시간이나 늘었다고 하니 일선 경찰도 억울한 게 있을 듯하다.

□ 소설가 김훈은 소방차가 출동할 때면 “살려서 돌아오라. 그리고 살아서 돌아오라”고 기도했다(‘라면을 끓이며’)고 썼다.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구조받을 권리가 있고 또 인간이기 때문에 재난에 처한 인간을 구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목숨을 걸고 목숨을 구하는 가장 숭고한 직업이다. 소방관·구조대가 더 구하지 못해 형사 처벌한다는 무지막지함은 그들의 헌신을 모멸하는 일이다. 그들에게 상처를 남길까 걱정이다.

김희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