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도공사(코레일)에서 올해만 4명의 노동자가 작업 도중 사망하면서 고용노동부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를 조사하기 위해 압수수색에 나섰다. 코레일 노조는 정부의 민영화 정책과 인력 감축 정책으로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며 근본적인 재발방지 대책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8일 고용노동부 중부지방고용노동청은 서울 중구 코레일서울본부 사무실과 경기 고양시 지하철 3호선 정발산역 사무실 등 4곳을 압수수색했다고 밝혔다. 고용부 관계자는 "이번 압수수색은 9월 30일 정발산역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와 관련한 것"이라며 "사고 당시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가 충분했는지 여부를 철저히 확인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나희승 코레일 사장은 이미 중대재해법으로 입건된 상태다.
코레일에서는 올해만 4건의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건설회사인 DL이앤씨와 더불어 최다 기록이다. 3월 대전차량사업소에서 열차 검수 작업 중이던 50대 노동자가 열차와 레일 사이에 끼여 사망했으며, 7월에는 50대 시설관리원이 서울 중랑역에서 배수로 점검 작업 중 열차에 부딪혀 사망했다. 9월 정발산역 사고 당시엔 스크린도어 통신 장비 교체 준비 작업 중이던 50대 노동자가 역에 진입하던 열차에 치여 치료를 받다 사망했고, 이달 5일엔 30대 노동자가 경기 의왕시 오봉역 구내에서 기관차 입환 작업 중 기차에 부딪혀 사망했다. 최근 6년간 코레일 산재 사망 건수는 무려 15건에 달한다.
노조는 정부의 무리한 인원감축 및 비용절감 정책으로 사고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오봉역 사고 직후 어명소 국토교통부 2차관이 "관행적인 안전 무시 작업 태도를 타파하도록 쇄신해야 한다"고 발언하면서, 책임을 현장 작업자의 개인적인 실수로 돌리려는 정부의 태도를 강하게 문제삼고 있다. 철도노조는 이날 오봉역 산재 사망 관련 간담회를 열고 "사고 원인은 작업자 개개인의 행동이 아니라 높은 업무강도와 안전설비의 미비, 사람의 실수를 유발하는 불완전한 설비 등에 있다"고 꼬집었다.
오봉역은 전국에서 가장 넓고 복잡한 화물기지로 꼽히는데, 워낙 일이 힘들고 산재 사고가 자주 발생해 노동자들이 기피하는 곳으로 알려졌다. 허병권 철도노조 노동안전실장은 "오봉역은 곡선 구간이 많아 열차 유도 중계를 위해서는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한데, 예산 문제로 충원이 되지 않아 3인1조 작업이 기본임에도 2인1조 작업이 비일비재한 편"이라며 "2019년 1,865명의 직원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추산 결과가 나왔는데, 정부는 오히려 인력 감축 및 철도 민영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2020년부터 오봉역 조별 인력은 16명에서 13명으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안전통로가 없어 노동자들이 선로 위를 뛰어다녀야 할 정도로 환경이 열악한 것도 문제다. 노조는 "작업통로가 없어 열차 입환 작업 중 사망사고 위험이 매우 높다"며 "주변에 적재물이 놓여 있거나 구조물이 돌출돼 있어 넘어짐에 의한 사고 우려가 원래부터 컸다"고 설명했다. 특히 오봉역은 조명 조도가 낮아 야간에 어두운 편이다. 허 실장은 "그간 수차례 개선을 요청했지만 예산 부족을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했다"며 "인력 충원뿐만 아니라 작업통로 설치, 조명탑 설치 등의 조치가 당장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조는 인력 감축을 압박하고 있는 정부의 태도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철도노조 측은 "수도권 광역전철역 55% 이상이 2인 근무로 굴러가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도저히 혼잡역 인파 관리가 어렵다"며 "기획재정부가 요구하는 인력 감축은 안전 업무의 외주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만성적인 인력 부족으로 혼잡도 높은 역의 사고 위험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