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비판하는 건 좋다. 8달러만 내라."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위터를 인수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운영 방침에 '푸른 체크 표시(blue check mark)'를 달고 있는 유명인들이 반발할 때마다 머스크가 트위터로 내놓은 답변이다. 한국어 트위터 이용자들 사이에서 '파란 딱지' 또는 줄여서 '파딱'으로 불리는 푸른 체크는 원래 유명인이나 신원 증명이 필요한 트위터 이용 계정에 달리는 '신원 보증' 표시다.
머스크는 이를 월 구독료 8달러(정확히는 7.99달러)인 '트위터 블루' 유료 서비스에 가입해야만 유지할 수 있게 정책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이 정책은 현재 트위터 이용자들 사이에서 큰 논란을 부르고 있다. 신원 증명을 위해 등장했고 현재는 어느 정도의 신뢰도를 보증하는 푸른 체크를 볼모로 삼아 사실상 '트위터세'를 징수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에서다. 정책 변경에 항의하는 푸른 체크 계정 중 일부가 이름을 일론 머스크로 바꾸는 '가짜 머스크' 대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머스크는 지난 1일 "사람들에게 힘을 돌려주고 엉터리 시스템을 재구성한다"는 이유로 8달러를 내고 트위터 블루에 가입해야 푸른 체크를 유지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트위터 블루는 트위터에서 기존에도 제공하던 프리미엄 서비스인데 맞춤 탐색, 인기 있는 기사 찾기, 여러 개의 트윗으로 이어진 타래(thread)를 이어주는 '읽기 도구' 기능 등, 트위터 이용에 필수적이지는 않은 편의성을 제공하는 수준이었다.
반면 푸른 체크는 중요도가 다르다. 2009년 야구선수 토니 라루사가 가짜 토니 라루사 계정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 이후로 등장한 푸른 체크는 계정의 주인공이 실제로 그 계정에서 자칭하는 대상과 같은지의 여부를 확인하는 수단으로 사용됐다. 초창기에는 트위터 쪽에서 임의로 신원이 확인된 유명인에게 푸른 체크를 부여하는 형태였다. 트위터는 2016년부터 푸른 체크 신청을 받았다가 이를 무분별하게 제공했다는 이유로 2017년에 잠시 폐쇄했고, 2021년에 다시 열었다.
팬심으로든, 조롱의 목적이든, 현재 트위터에서 유명인을 사칭하거나 패러디할 목적으로 계정을 만들어 운영하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가운데 푸른 체크는 사실상 그 계정에서 자칭하는 주체와 실제 계정 운영자가 일치하는지 여부를 알리는 핵심 요소였다. 수많은 정치인과 기업, 단체 등이 푸른 체크를 달아 운영 계정의 진위 여부를 표시해 왔다.
문제는 머스크가 이를 유료로 만들겠다고 하면서 발생했다. 기존에 푸른 체크를 달고 있던 유명인이나 단체들 입장에선, 그냥 얻을 수 있었던 것을 졸지에 유료로 구매하게 된 셈이다. 이미 푸른 체크를 달고 있는 많은 유명인들이 파란 딱지를 유지하기 위해 유료 서비스에 가입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머스크와 트위터에서 직접 대화를 나눈 작가 스티븐 킹은 "오히려 내가 돈을 받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밝혔다. 공포 미스터리 작가로 높은 지명도가 있는 자신이 트위터에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이용자 유입에 기여하지 않았느냐는 얘기다.
일각에선 8달러를 내지 않고 푸른 체크를 잃어버린 진짜 계정 대신, 가짜 계정이 나타나 진짜 행세를 할 가능성이 우려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푸른 체크의 입수 경로를 바꿔버리면서 기존에 푸른 체크를 얻기 위해 거쳐야 했던 인증 프로세스와 검증 인프라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머스크가 "트롤과 가짜뉴스를 막기 위해" 이런 조치를 취한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진짜를 쫓아내고 가짜뉴스를 증폭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머스크는 이런 지적에 명확히 답하지 않았다. 대신 스타벅스 커피와 트위터의 푸른 체크를 비교하며 "8달러가 아깝냐"는 태도를 취했다. 이러자 여러 '푸른 체크 계정'들은 이름을 일론 머스크로 바꾼 채 단체 트롤링을 시작했다. 머스크 흉내를 내며 "부인이 날 버렸다(파트너였던 그라임스와의 결별을 가리킨다)"거나 "암호화폐 거래에 반대한다(머스크는 유명한 암호화폐 옹호자다)" 같은 글을 남기는 식이었다.
머스크는 6일 "명확한 패러디 표시 없이 사칭하면 경고 없이 계정을 영구 중단시킬 것"이라고 밝혔고 "계정의 명칭을 바꾸면 바로 푸른 체크를 떨어뜨리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기껏해야 몇몇 계정을 정지했을 뿐, 다른 업데이트 방안은 적용되지 못했다. 새로 등장한 패러디 계정들 중 일부는 정지됐지만 일부는 여전히 활동 중이다. 머스크는 "표현의 자유 지지자, 단, 본인이 기분 나쁜 것만 제외하고"라는 조롱을 받고 있다.
애초에 7일부터 실행한다고 예고했던 트위터 블루의 푸른 체크 제공 기능도 구현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푸른 체크가 대거 등장하면서 예상되는 혼란 때문에 미국 중간선거(8일) 이후에 제공하기로 했다"는 트위터 직원의 발언을 전했다. 하지만 머스크가 너무 많은 직원을 일시에 해고하는 바람에 기능 구현이 지연된다는 관측도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현재 트위터는 해고 처리된 일부 직원에게 다시 회사로 돌아와 달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푸른 체크'와 관계없는 이용자들은 여전히 트위터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머스크가 '푸른 체크'와 함께 트위터 유료 사용자들에게 본인의 트윗과 답글을 우선 표시할 기능을 제공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사실상 유료 사용자 위주로 발언권을 차등 부여하게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파딱'의 신원 검증으로서의 의미가 사라지게 되면 가치가 없어지기 때문에 푸른 체크를 유료로 판매해도 곧 허울뿐인 표시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인터넷 자유주의를 옹호하는 비영리단체인 전자프론티어재단(EFF)의 '국제 표현의 자유' 이사인 질리언 요크는 '리코드'와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트위터의 검증 시스템은 불완전했고 트위터가 푸른 체크를 부여하는 대상은 주로 미국인 위주로 편향돼 있었다"면서 "그러나 머스크의 대체 제안은 더 나쁘다. 푸른 체크는 누군가가 당신의 정체를 객관적으로 검증했다는 표시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