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11월 11일 새벽 5시, 제1차 세계대전 휴전협정(콩피에뉴 협정)이 맺어지면서, 무려 3,187만여 명의 군 사상자를 낸 세계대전이 끝났다. 한 달 기한의 휴전 협정은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될 때까지 2차례 연장됐지만 그건 정치가들의 일이었고, 군인의 일은 끝난 셈이었다.
휴전 소식이 최전방 부대에까지 알려질 수 있도록 협정 효력은 6시간 뒤인 오전 11시에 발효됐다. 그 감격적인 하루 동안, 자정부터 해서 11시간 사이, 1만1,0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제2차 세계대전 노르망디 상륙전 연합군 사상자(약 1만여 명)를 능가하는 피해였다.
휴전 소식은 무전과 전령 등을 통해 서부전선 말단까지 순식간에 전해졌고, 병사들은 죽음의 긴 어둠이 걷힌 듯 환호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는 군 지휘관들이 있었다. 그들에겐 승진을 위한 전과(戰果)가 필요했고, 유예된 6시간이 마지막 기회였다. 사상자 다수는 사단장 등의 명령으로 마지막 전투에 나선 이들이었다. 미군 89사단처럼 사단장이 병사들에게 휴전 선물로 샤워를 할 수 있게 해주려고 인근 독일군 주둔지(프랑스 스테네) 공격 명령을 내렸다가 3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경우도 있었다.
벨기에 에노주 몽스 전선에 배치된 영국군 이병 조지 엘리슨은 11일 오전 9시 30분, 수색 작전 중 전사했다. 보어전쟁에도 참전한 만 40세 석탄광부 출신인 그는 지옥 같던 참호전과 가스·탱크공격, 솜 전투에서도 살아남은 베테랑이었고, 고향 리즈에는 아내와 4세 아들이 있었다. 양치기 출신인 프랑스 415보병연대 전령 어거스틴 트레비숑도 명령에 따라 뫼즈강 도하작전에 나선 전우들에게 ‘11시 30분 식사 집결’ 소식을 전하려다 오전 10시 45분 독일군 유탄에 희생됐다. 캐나다군 이병 조지 로렌스 프라이스는 퇴각하는 독일군을 추격하다 몽스 북부 전선에서 10시 58분 숨졌고, 독일계 미국인 이병 헨리 군터는 프랑스 아르곤 전선에서 휴전 1분 전인 10시 59분 전사했다. 그가 1차 세계대전 마지막 희생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