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에 무기 지원하면서도 "평화 협상했으면"...미국의 복잡한 속내

입력
2022.11.06 22:00
17면
WP "미국 우크라에 러시아와 평화 협상 설득"
미국, 겉으로는 여전히 "우크라 지원" 강조
전쟁 장기화에 피로감 커져..."결국 협상 나설 것" 전망

"우크라이나 지원을 계속하면서도 고물가와 핵 위기는 수습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강력한 지지와 지원 의사를 지속적으로 밝히면서도, 물밑에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평화 협상을 은근히 추진하는 이유다.

"미, 우크라에 '협상 완전 배제는 말라' 설득"

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바이든 행정부가 러시아와의 협상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도록 우크라이나를 물밑에서 설득하고 있다고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평화 협상은 없다"고 선언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대화의 문은 열어두라"고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우크라이나에 아낌없이 퍼주는 한편 전쟁의 종식을 내심 바라는 바이든 정부의 입장이 얼마나 복잡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의 기본 입장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이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전날 예고 없이 우크라이나를 '깜짝 방문'한 것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지원 의사를 밝히기 위해서였다. 그는 T-72 전차와 중거리 지대공 미사일 호크를 포함한 4억 달러(약 5,600억 원) 지원 계획을 우크라이나에 전달했다.

이번 방문은 바이든 대통령의 후반기 국정운영을 좌우할 중간선거를 나흘 앞둔 예민한 시점에서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미국 내 회의적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서도, 설리번 보좌관은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전쟁 현실 여파로...미국 협상 추진


미국이 물밑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대화를 추진하려는 것은 전쟁의 현실적인 여파 때문으로 보인다. 전쟁 장기화로 전 세계 인플레이션 압력은 갈수록 고조되고 있으며, 특히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핵전쟁 공포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에너지난 심화로 EU를 포함 전 세계 우방국들과 단일 대오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미국 관리는 "우리 파트너국 일부는 우크라이나발 피로감을 진지하게 느끼고 있다"며 "우크라이나가 먼저 대화의 시그널을 보내는 건 이들의 지지를 계속 얻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결국 우크라이나가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도 조심스레 나온다. WP는 "미국 관리들이 젤렌스키 대통령이 전쟁 초기 평화안을 제시했듯 결국 협상을 받아들일 것으로 믿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내서 종전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보수주의자를 포함한 공화당뿐 아니라 진보 진영에서도 흘러나온다. 미국의 진보적 싱크탱크인 정책연구소(IPS)의 필리스 베니스는 '이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제목의 영국 가디언 기고를 통해 미국의 외교적 노력을 촉구했다. 그는 "미국은 러시아와 직접 대화를 하면서 외교가 (협상을) 견인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며 "휴전이 되면 대러 제재를 해제하겠다고 분명히 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러 주재 미국 대사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차장을 지낸 알렉산더 버시바우는 "협상에 더 적합한 조건이 되면 바이든 행정부도 더는 소극적이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궁극적으로 싸움을 하는 건 우크라이나인들이므로 우리는 그들의 생각을 넘겨짚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권영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