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 13일 끝나니 이동통제 26일... 이철 박사의 천신만고 베이징 입성기

입력
2022.11.0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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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지는 중국, 사라지는 관시]
2월 말 2주 일정으로 베이징서 입국
3월 봉쇄 시작되며 항공편 두 달 밀려
건강문제로 지연되며 10월표 겨우 구해
결국 톈진으로 날아가 '육로 이동' 결정
격리 끝나도 기약 없는 그린코드 발급


"제가 원래 2주만 한국에 머물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200일 넘게 베이징에 돌아가지 못할 거라곤 상상도 못했네요."

지난달 18일과 이달 4일, 두 차례 한국일보와 전화인터뷰를 진행한 중국 전문가 이철(62) 작가의 목소리에는 피곤함이 짙게 묻어 있었다. 인터뷰 당시 그는 중국 톈진의 호텔에 머물며 중국 당국의 베이징 진입 허가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중이었다. 베이징 집을 떠난지 8개월, 예전엔 서울서 한나절이면 가던 베이징은 이제 닿을 듯 닿지 않는 '멀고도 먼 곳'이 됐다.

이 작가는 누구보다 중국 실전 비즈니스 경험이 많은 '재야의 중국통'이다. 그는 서울대 산업공학과에서 학·석·박사 학위를 딴 뒤 중국으로 건너가 KT와 삼성SDS의 현지 법인 등에서 20년 이상 일했다. 오랜 기간 중국 경제·산업계 현실을 온몸으로 체득했고, '중국의 선택'(2021) '중국 주식 투자 비결'(2022) 등의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누구보다 중국을 잘 안다고 자부했던 그에게도, 이번만은 중국은 참으로 어려운 나라였다. 중국 당국의 '제로 코로나' 봉쇄정책이 장기화되면서 베이징으로 향하는 하늘길이 사실상 끊어졌고, 개인적 이유(건강)와 방역 절차상 문제 탓에 8개월 이상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 8개월 간 이 작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2주 일정이 200일이 된 사연

이 작가가 개인적 일로 한국에 들어온 건 올해 2월 25일이었다. 2주 일정을 마친 뒤 바로 베이징으로 돌아갈 계획이었지만, 마침 그 때 중국에서 코로나가 재확산됐고, 중국 정부는 이 작가가 예약했던 베이징행 항공편을 취소했다.

봉쇄만 풀리면 금방 끝날 것이라 생각했던 한국 체류는 예상 외로 길어졌다. 봉쇄 이후 중국행 항공편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코로나 이전에는 하루 2편이던 인천발 베이징행 항공편은 코로나 이후엔 일주일에 1편, 올해 2월에는 한 달에 1편까지 줄었다. 이 작가는 "항공권이 취소된 뒤 구할 수 있는 가장 빠른 항공편이 5월이었다"며 "주 1회씩 운행하던 시절 예약됐던 표들이 차례로 밀리다보니 일정이 몇개월이나 밀린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4월 이 작가는 건강 문제가 생겨 5월 출발 항공편을 취소해야만 했다. 곧바로 다시 베이징행을 예약하려니 가장 가까운 항공편이 10월이었다. 더는 늦출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우선 톈진행 항공편을 탄 뒤, 톈진에서 내려 육로로 베이징에 가는 것으로 계획을 틀었다.


중국 들어가도 통제·제한 수두룩

정작 중국에 돌아가려니 입국 절차가 예상보다 까다로웠다. 중국에 들어가려면 한국에서 두 차례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해야 한다. 출국 48시간 전 1차, 24시간 전 2차 검사를 모두 거쳐야 한다. 2차 검사는 1차와 24시간 이상 간격을 벌려야 했고 2차 검사 이후 24시간 안에 출국해야 해, 이 두 조건을 맞추기가 매우 어려웠다고 한다. 게다가 두 차례 PCR은 서로 다른 검사소(병원)에서 다른 시약으로 진행해야 한다. 비행기 탑승을 위해선 중국 당국으로부터 '건강 QR코드'도 발급 받아야 했다.

이 작가가 우여곡절 끝에 톈진에 도착한 것은 9월 27일. 중국 정부가 설치해 둔 각종 장애물을 뚫고 어렵사리 중국 땅을 밟았건만, 다시 격리와 통제의 관문을 넘어야 했다. 중국은 해외 입국자에게 '7+3 격리'를 강제하고 있다. 7일 간 시설격리 후 3일 동안 자가격리하는 방식이다. 한국인인 이 작가는 톈진에 연고가 없어 호텔에서 10일 격리를 하려고 했는데, 톈진 방역센터에서 "한 시설에서 연속 격리는 불가능하니, 2차 격리(3일)는 다른 호텔에서 해야 한다"는 규정을 알려왔다. 이 작가는 "결국 13일간 격리를 했다"며 "호텔 등 격리 비용은 본인 책임이라 금전적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고 덧붙였다.

중국에 가서도 이틀마다 PCR 검사를 해야 했다. 중국 보건당국이 9월부터 △항공기·열차·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48시간 내 △숙박시설에 투숙하거나 관광지 등 밀집 장소를 출입할 때는 72시간 내 PCR 검사 결과를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중국 당국은 확진자 통제를 위해 사람들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QR코드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 중국인뿐 아니라 중국에 방문한 모든 사람들은 가는 곳마다 스마트폰 이동동선 추적 앱의 녹색 건강 코드(그린코드)를 제시해야 입장할 수 있다. 이 작가는 "중국에 오면 반드시 동선 추적 앱을 설치해야 한다"며 "도시간, 국가간 출장과 이동이 잦은 직장인들은 굉장히 불편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전했다.


'그린 코드'는 언제쯤 나오려나

지난달 중순 격리는 끝났지만 베이징으로 가는 길은 열리지 않았다. 톈진에서 베이징으로 가려면 베이징 시정부의 이동 허가가 필요한데, 한 달 가까이 기다려도 허가가 나지 않았다. 베이징 시정부가 배포한 앱에 그린코드가 떠야 베이징으로 들어갈 수 있다. 게다가 지난달 16일 베이징에서 열린 공산당 당대회를 계기로 방역이 한층 강화되면서 수도로 들어가는 길은 '바늘 구멍'이 됐다.

이 작가는 "베이징 시정부에 그린코드를 계속 요청했지만, 20일째 '당신은 위험지역에 있어 베이징에 들어올 수 없다'는 문자만 왔다"고 말했다. 이어 "톈진·베이징 간 고속도로는 사실상 봉쇄됐고, 고속철도 운행도 30분에 한 편에서 하루 3편으로 축소됐다"며 "외국인뿐 아니라 중국인들도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격리 해제 후에도 그린코드가 나오지 않자, 그는 다시 베이징 육로 이동을 포기하고 한국에 돌아와 베이징 직항편을 이용해 집으로 돌아갈 계획을 잡았다. 그러던 중에 이달 4일 갑자기 그린코드가 떴다. 중국 입국 39일 만이었다.

이 작가는 5일 우여곡절 끝에 베이징행 기차표를 사서 꿈에 그리던 베이징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올해 2월 베이징을 떠난 지 정확히 254일 만이었다. 이 작가는 "저 같은 외국인뿐 아니라 권력과 부를 가진 중국인들마저 똑같이 베이징에 못 들어가는 상황임을 발견하고 많이 놀랐다"며 "오랜만에 베이징에 돌아왔지만 다시 격리를 해야 한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에게는 또다시 '7일 격리'가 남아 있었다.

이승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