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 조달도 비상인데, 금융당국 또 안 보인다

입력
2022.11.0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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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랜드 사태’로 국내 채권시장 자금줄이 마르는 와중에 외화 채권 발행마저 어려워지고 있다. 자금난이 증권ㆍ보험사와 대기업으로 확산하는 형국이다.

흥국생명은 지난 1일 5억 달러 규모 신종자본증권(영구채) 조기상환(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했다. DB생명보험도 300억 원 콜옵션 행사를 연기했다. 국내 금융사가 외화 채권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은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기간이던 2009년 이후 13년 만이다. 신종자본증권은 자금을 상환하지 않아도 돼, 회계상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자본건전성에 영향을 주지 않아 금융사들이 즐겨 발행한다. 대신 발행을 쉽게 하기 위해 ‘5년 뒤 조기상환하는 콜옵션을 행사할 것’이라는 계약을 추가하는데 이를 어긴 것이다.

물론 흥국생명이 국제 금리 급등으로 신규 대출로 이전 대출을 갚는 ‘차환’ 금리가 콜옵션을 포기할 경우 물어야 할 추가 금리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옵션을 포기한 것은 이해된다. 하지만 “한국 대형 보험사가 차환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을 국제 금융시장에 공표한 것이어서, 향후 해외시장에서 국내 기업의 외화 채권 발행이 어려워질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내년 만기 도래 외화 채권 규모가 올해보다 20% 이상 증가한 249억 달러(약 35조 원)나 된다.

이런 파장을 막아야 할 금융위원회가 이번에도 보이지 않았다. 강원도의 레고랜드 채무불이행 선언 이후 보름 이상 방관하다 위기를 키운 게 한 달도 되지 않는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4일 “콜옵션 행사 여부를 결정할 때, 외부에서 어떻게 보는지도 고려해야 했는데 그런 것까지 생각 못 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것까지 생각’해야 하는 것은 개별 금융사가 아니라 금융당국의 책무다.

고환율ㆍ고금리ㆍ고물가로 경제가 나락으로 치닫는 상황이다. 이런 위기에 충분히 막을 수 있는 ‘금융 사고’가 잇달아 벌어지고 있는데도, 여전히 한가한 당국을 보면서 국민의 불안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