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아버지의 상을 치를 때, 내가 가장 놀랐던 건 장례식장이 무질서한 슬픔으로만 점철되어 있지는 않다는 점이었다. 생애 처음으로 목격한 장례식은 어린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고 번잡했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을 당한 뒤, 사흘 내에 지인들을 모아 망인에게 인사를 드리고 장지를 찾아 안치하는 과정을 모두 마치는 예식이 한가할 수는 없었다.
수의와 관을 고르는 것 외에도 손 가는 일이 많았다. 어른들은 계속 누군가와 통화했고, 조문객이 끊임없이 드나들었다. 음식과 물품을 들이고 치우는 일도 그만큼 잦았다. 다만 그 일을 상주인 우리 가족이 하지는 않았다. 멀고 가까운 친척들은 마치 늘 그래 왔던 양 묵묵히, 그리고 빠르게 역할을 나눠 맡았다.
젊은 친척들은 음식을 나르고 상을 치우고 쓰레기를 묶어 버렸다. 이모들은 끼니 때마다 엄마와 우리 남매를 챙겼고, 아버지의 친구들은 밤새 술을 마시며 자리를 지키다 발인 때 관을 들었다.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이 모든 장면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장례식은 오로지 슬퍼하기 위해 모이고, 슬퍼하다가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그 검은 옷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들이 낯설게만 보였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그것이 가장 슬퍼해야 할 사람들을 위한 배려였다는 걸 깨달았다. 고인을 보내는 길이 매끄럽도록, 현실적인 문제에 감정을 흐트러뜨리지 않도록, 밥을 먹고 물을 마시는 일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그래서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망자를 위해서 슬퍼할 수 있도록. 상주가 아닌 주변인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애도와 위로는 그들이 다른 일에 신경 쓰지 않고 슬퍼할 수 있게 돕는 것이었다.
온 나라가 거대한 장례식장이 된 이번 주, ‘국가애도기간’이라는 말 앞에서 유족 아닌 이들이 취해야 할 애도의 방식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한다. 대통령은 이를 이유로 언론과의 문답도 끊은 채 매일 분향소를 찾고, 지자체장들은 공공서비스를 중지하고 공연을 취소하며 자영업자에게 휴업을 강요한다. 이렇게 입을 다물고 모두 조용히 고개를 숙이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그들의 자리에 합당한 ‘애도’일까.
도심 한복판에서 젊은이들이 길을 걷다 죽었다. 사람도 장소도 죽음의 확률과 거리가 멀었고 막을 수 있던 참사였기에 더 마음 아프지만, 그런 만큼 시끄럽게 책임을 묻고 문제를 찾아 고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하여 유가족이 더 이상의 의혹을 갖지 않도록, 또 누군가 똑같이 죽을까 염려하지 않고 온전히 가족의 죽음만 슬퍼하도록 도와야 한다. 그 일은 시민의 안전을 책임졌어야 했을 조직이 나눠 맡아야 할 몫이며, 그것이 그들의 애도여야만 한다.
사고 당일 현장에서 희생자들의 시신이 단정하게 안치되도록 손발을 모아주고 다닌 사람과 손을 맞잡고 인간띠를 만들어 희생자들을 가려 준 행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시민들은 이미 자신의 자리에서 희생자와 유족이 더 존중받고 덜 상처받도록 도우며 분주하게 애도하고 있는데, 정작 유족의 짐을 덜어주어야 할 국가는 애도를 핑계로 무책임한 침묵과 부적절한 발언을 이어가며 상처를 더하고 있다. ‘참사 희생자’라는 단어조차 못 쓰고 ‘사고 사망자’라니. 이건 양심 이전에 염치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