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연 자취 감춘 고교야구 에이스 3인방, 지금 어디에

입력
2022.11.05 10:00
대구고 트로이카 한 축이라 불렸던 장준혁
돌연 자취를  감추었던 경북고 에이스 장보근
발전 가능성 무궁무진 상원고 박민제
대학야구 인기 부활 이바지 후 프로 도전

대구고 장준혁(19), 경북고 장보근(18), 상원고 박민제(19) 선수. 이들은 내년도 대학 야구판에서 전화위복이란 고사성어를 자주 떠올리게 할 대표 3인방이 될지도 모르겠다. 나락에 빠졌던 올해 고교 3학년을 극복하고 내년 대학 1학년부터는 꽃길에 접어들 것으로 기대를 모으기 때문이다.

이들은 올초까지만 해도 프로팀 지명이 당연시 되던 팀의 에이스였다. 당연히 차세대 프로야구계를 이끌 재목이라는 평가까지 받았으나 기대와 달리 한 해동안 흔적을 감추거나 시련을 겪었다.

대구고 트로이카의 한 축으로 불렸던 장준혁, 경북고 에이스 자리를 두고 김기준(18)과 각축을 벌이던 장보근, 프로 지명이 거론되던 상원고 박민제, 이들 3명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대구고 트로이카의 한 축으로 불렸던 장준혁

투수 장준혁은 신장 190㎝ 몸무게 88㎏의 체격을 바탕으로 최고 구속 149㎞의 포심 그리고 슬라이드, 커브를 던진다. 최대 무기는 강한 회전력을 바탕으로 한 종속이 살아있는 대포알 같은 묵직한 포심이다.

그는 각각 프로 1차 지명을 받았던 같은 팀 이로운(SSG), 김정운(KT)과 함께 대구고 선발의 한 축을 담당, 매스컴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볼의 구위만을 놓고 보면 대구고 트로이카 중 최고라고 평가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작년 9월 U-23 대표팀과의 연습경기에서 보여준 그의 구위는 단연 압권이었다. 대표팀 형들의 방망이는 그가 내려 꽃는 대포알 같은 볼에 허공을 가르기 일쑤였다.

마치 포수 미트를 찢어버리겠다는 것처럼 던져대는 장준혁의 볼에 대표팀 선배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안타는커녕 방망이에 볼을 맞출 수는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는 이날 연습경기에서 모두 3이닝을 소화하면서 탈삼진 7개, 그 중 5연속 탈삼진과 1피안타 무실점을 기록했다. 고교 2학년생이 U-23 대표팀 선배들을 상대로 압도적인 구위를 선보이며 진가를 확실히 보여주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구고 트로이카 중 가장 앞에서 팀을 이끌어 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3학년이던 올해 그는 소위 '죽을 쒔다'. 그가 기록한 올 한해 총 이닝은 주말리그 1이닝, 신세계 이마트배 전국고교야구대회 2이닝 총 3이닝이 전부였다.

등판 자체가 불가능 했던 이유는 통증 탓. 고교 2학년 늦가을부터 그를 괴롭혔던, 원인과 병명을 알 수 없는 아픔으로 공을 던질 수가 없었다.

인근 병원을 수차례 찾아 검사를 받았지만, 이상이 없다는 말만 들었다. 자신은 아픈데, 병원에서는 매번 이상이 없다고 하니 꾀병으로 비춰지는 것 같아 괴로웠다. 무엇보다 공을 던지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니 미칠 지경이었다.

바깥에서는 이런 그를 보고 "쉬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런다", "원래 체력이 약하다", "멘탈이 약해서 그렇다"는 등 비난도 난무했다. "무엇보다 가장 괴로웠던 것은 저를 믿고 뒷바라지해준 아버지, 많은 관심과 지원을 해주신 동문 선배들에게 미안해 낯을 들 수가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

통증의 이유만이라도 알고 싶어 서울의 대형 병원을 찾아가 정밀 검사를 받은 결과 '피로 골절'로 판명 받았다. 2021년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공을 만지지 말라는 의사의 권고를 들었다. 하지만 2022년 1월 말 어깨의 통증이 없어지는 듯 해 의사의 권고를 무시하고 공을 만졌다. 이것이 일을 키우게 되어 결과적으로 올해 1년간을 마운드에 설 수가 없게 되었다.

사실 장준혁에게 주말리그, 전국대회의 투구이닝과 전국대회 팀의 8강 이상 성적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프로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프로 지명 순위가 문제지 프로에 입단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졌을 정도로 그의 구위와 실력은 이미 인정을 받고 있었다.

프로 스카우터가 지켜보는 전국대회에서 쇼 케이스만 잘 치루기만 해도 프로 입단은 문제가 없다 할 정도였다. 그러나 인생이란 것이 자신의 생각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었다.

장준혁은 비록 지난 1년간 바닥을 기었지만 "이것으로 야구 인생이 끝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피로 골절도 완치가 되어가고 있다"고 희망을 다시 품고 있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프로 입문이 조금 늦어질지 모르지만, 먼 훗날 선수 생활을 마무리할 때는 로운이, 정운이 못지않은 훌륭한 캐리어를 지닌 선수로 기억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며 각오를 밝혔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던 경북고 에이스 장보근

신장 183㎝, 몸무게 86㎏, 시속 146㎞의 속구에 슬라이드 커브를 던지던 야구 소년 장보근은 야구 실력만큼이나 출중한 외모를 겸비해 뭇 소녀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같은 학교 김기준과 함께 경북고를 이끌 쌍두마차로 꼽히던 그가 올해 초 돌연 자취를 감추었다. 이유는 부상. 어깨 염증으로 인한 부상을 숨긴 채 등판을 한 것이 화를 키우게 됐다. 이준호 감독이 다행히 구위와 투구폼의 이상을 발견했기 망정이지 부상을 숨기고 계속 공을 던졌다면 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야구선수에게 고교 3학년 시즌은 중요하다. 프로지명과 대학 진학이 결정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이준호(46) 경북고 감독은 "아쉽고 속상하지만, 지금 아픔을 숨기고 공을 던진다고 해서 투구가 제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이대로 계속 무리를 한다면 앞길이 구만리인 보근가 유니폼을 벗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재활을 하면 완치가 가능하니 선수의 장래를 생각하여 올해는 무리시키지 않겠다고 어려운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고 말했다.

장 선수는 "현재는 어깨 염증 부상은 완치가 된 상태이고 지난달부터 다시 볼을 만지고 있는 상황이다. 구속도 차츰 올라오고 있으니 따뜻한 내년 상반기 말에는 예전의 구위를 100% 찾는 것이 1차 목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올해 제가 마운드에 올랐다면 건방진 얘긴지는 모르나 팀 성적이 조금은 더 좋았을 것인데 그렇지 못해 감독님께 죄송하고, 항상 신경 써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장보근은 "올해 경북고에서 4명의 친구들이 프로에 입단해 솔직히 부럽지만 지금은 예전처럼 다시 볼을 던질 수 있게 돼 행복하다"며 "프로에 먼저 가는 친구들에게는 열심히 해서 자리 확실히 잡아 놓으라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그 자리 내가 빼앗고 말겠다고 겁을 줬다"고 웃었다.


야구밖에 모르는 야구바보, 상원고 박민제

상원고 박민제는 신장 192㎝, 몸무게 96㎏, 우투 우타 최고 146㎞ 슬라이드, 커브가 주무기다.

올해 성장세가 가장 두드러졌던 선수로 올해 초 139㎞에 머물던 구속이 9월에는 146㎞까지 올라왔다. 발전 속도 면에서는 타 선수들보다 폭이 크고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올해 초만 해도 프로 스카우터들은 박민제를 눈 여겨 보지 않았다. 상황이 바뀐 것은 6월 중순. 그를 바라보는 눈빛들이 달라졌다. 눈에 확 띄는 선수는 아니지만 꾸준한 성장세, 타고난 하드웨어에 야구밖에 모르는 야구 바보, 그리고 인성이 좋은 선수. "상원고 박민제가 좋다"는 평가는 금세 퍼져나갔다.

6월26일 주말리그 포항체철고 전에는 프로 스카우트 3명이 그를 관찰하기 위해 대구를 찾았다. 박민제는 임상현(17) 투수의 뒤를 이어 받아 10회 연장 위기 상황에서 호출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이 경기를 넘어서지 못했고 프로지명의 갈림길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박민제는 "'그 상황에서 꼭 박민제를 등판 시켰어야 했냐'고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있지만 모든 것은 제가 부족해서 그렇다. 팀의 위기 상황에서 내가 극복했더라면 팀도 좋았을 것인데, 그렇지 못했다. 선발만 주로 맡아하다 낮선 상황에서의 호출을 받은데다 프로 스카우터가 관찰하고 있다고 하니 솔직히 정신이 없었다"고 당시를 되돌아 보았다.

박화랑(32) 상원고 투수 코치는 "박민제는 타고난 신체조건에 투구 폼도 깔끔하고 무엇보다 인성이 좋고 야구밖에 모른다. 솔직히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한다"며 "지금은 191㎝의 축복받은 신장을 모두 사용하지는 못하는데 체중과 근력을 늘려 자신의 신장을 모두 사용하게 된다면 무서운 투수가 될 것이다"고 평가했다. "작년 겨울 최고구속이 139㎞에 불과 했지만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인 지금은 146㎞를 던지고 있는 것이 좋은 예"라고 했다.

안지만(40) 전 국가대표 투수는 "장준혁 선수는 투구 시 공을 때릴 줄 아는 선수다. 유연성은 동적인 것과 정적인 것으로 나눠지는데 장 선수는 특히 투구 시 동적 유연성이 좋다"며 “부상으로 고교 3학년이던 1년간 공을 만지지 못한 선수를 프로 스카우터가 지명하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고, 프로 행은 조금 늦추어지는 것뿐이니 절대 의기소침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평가했다.

안 전 투수는 "대학리그에는 우수한 지도자가 많다. 이들이 내년 대학 리그에서 활약해 대학야구 인기를 부활 시켜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이들 에이스 3인방은 최근 한자리에 모여 대학 야구의 부활은 물론이고 잠시 미뤘던 프로 무대의 꿈을 반드시 이루겠다고 서로를 격려하고 다짐했다.

박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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