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태원 참사 대응 부실 문제를 놓고 경찰이 원인규명을 위해 특별수사본부를 꾸려 조사에 나선 가운데 감찰 대상이 된 이태원파출소의 경찰관들은 극도의 사기 저하를 호소하고 있다. 익명게시판에 이태원파출소 직원을 자칭해 글을 올려 상부를 비판한 직원은 "인파가 많다고 신고됐을 때 이미 파출소 직원들만으로는 부족한 상황이었다"고 토로했다.
3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이태원파출소 근무 경찰관 A씨는 이날 이태원파출소의 대응을 해명했다. '압사 우려 신고'로 접수된 11건 중에 4건만 출동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한 곳의 지점에 비슷한 신고가 들어오면 동일 건으로 잡는다. 처리 도중에 마감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신고가) 떨어질 때마다 새로운 경찰관이 출동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 처음 나갔던 경찰관이 그것을 계속 처리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인파 우려 신고를 최초로 진행한 신고자가 "사고처리 결과를 알리는 문자가 오지 않았다"고 지적한 데 대해서는 "사고처리 통지 문자는 저희가 마감을 하면서 보내는 건데, 마감을 할 수가 없지 않나. 그러니까 당연히 문자는 안 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고가 터졌기 때문에 그렇게 보낼 수도 없을뿐더러, 통신도 되지 않았고, 평시보다 112신고가 많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A씨에 따르면 당일 이태원파출소에서는 혼잡 상황이 커지자 인원 4명을 따로 뽑아서 교통 정리와 인파 통제도 시도했다. 하지만 이미 역부족이었다. A씨는 "저희(파출소 근무자)는 일단 112신고 대응에 최적화돼 있는 경찰관이고, 범죄나 피해자 보호에 대해서도 계속 활동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차라리 우리가 사전에 계획을 해서 인파 흐름을 좀 우리가 관리했었으면 어떨까 하는 그런 생각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A씨는 상부의 감찰 지시 등 대응에 대해서 "꼬리 자르기라기보다는 이태원파출소를 언론과 비난의 한가운데에 내던진 것이라고 본다. 저희는 그 비난을 다 감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112신고 처리하기에 바쁘고, 능력의 150%까지 쓰기 위해 항상 노력했던 자부심으로 근무했다. 그런데 그걸(압사신고 대응처리) 이제 와서 우리에게 뒤집어씌운다는 건, 경찰 생활에 회의가 많이 든다"고 한탄했다.
경찰직 공무원 노조 격인 경찰직장협의회의 민관기 위원장도 이태원파출소 직원들의 편에 섰다. 이날 YTN 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와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잇달아 출연한 민 위원장은 "이분들이 112신고 지령을 받고 대처를 미흡하게 했다든가 아니면 신고 사건을 묵살을 했다든가 이러면 당연히 지탄을 받고 손가락질을 받는 게 맞지만, 전혀 그러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특별 감찰 지시가 내려오니 자괴감이 들고 힘이 빠진다고 얘기를 하더라"라고 말했다.
민 위원장은 전날 윤희근 경찰청장과 면담에서 "감찰을 하다 보면 먼지털이식 감찰을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런 부분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밝혔고, 파출소 근무자들이 신임이다 보니 동료 참석을 할 수가 있는데, 직장협의회에서 같이 조사실에 참석을 해서 진술 조력을 하겠다고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한편 민 위원장은 이태원 참사 당시 실제 경찰력 배치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은 확인했다고 밝혔다. 민 위원장에 따르면 지난 2021년엔 이태원에 경찰 85명과 별도로 질서유지 목적의 기동대 180명이 투입된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는 경찰관 137명이 배치됐지만, 이 가운데 정복을 입은 경찰은 58명이었다. 정복을 입지 않은 경찰들은 질서유지가 아닌 범죄예방과 현장검거 등의 목적으로 배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민 위원장은 일각에서 제기된 주장처럼 사복경찰이 마약 수사 때문에 배치된 것인지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