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연극 리뷰를 자주 쓰는 편이다. 아내가 무용이나 국악 공연을 좋아해서 요즘은 공연 리뷰도 틈틈이 쓰고 있다. 책을 내고 글 쓰는 걸 본업으로 삼기 전부터 나는 어떤 걸 보면 리뷰를 남기는 습관이 있었다. 돈 한 푼 생기지 않는 일이었지만 꽤나 열심히 했던 것 같다. 프랑소와 트뤼포(1932~1984) 감독이 얘기한 '시네필의 3단계'가 아니더라도 두 번 이상 보거나 그것에 대해 글을 쓰면 작품이 더 잘 보이고 비로소 '관계자'가 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다닌 광고회사의 선배들 생각은 달랐다. 그런데 쓸 여력이 있으면 시간을 아껴 카피를 더 쓰고 광고 아이디어를 더 내는 게 직업 윤리상 옳은 태도라는 것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 그런 죄책감이 없어져서 좋았다. 돈이 되지 않던 글이 '원고료'라는 열매를 달고 오는 경우도 생겼다. 한 출판사에서 우리 부부에게 매달 한 권씩 같은 책을 읽고 다른 리뷰를 써 줄 것을 요청했던 것이다. 나는 '부부 리뷰단'이라는 코너 제목을 만들고 아내와 함께 그 출판사에서 나오는 책의 리뷰를 썼다. 기자나 평론가, 출판사 직원이 아닌 일반 독자 입장에서 부부가 쓰는 리뷰는 관심을 끌었고, 덕분에 그 글은 한동안 우리 집의 생활비 역할을 해주었다.
하루는 집 근처로 찾아온 지인과 술을 마시다가 내가 낸 책 제목처럼 '부부가 둘 다 놀게 된 이후' 닥쳤던 경제적 어려움에 대해 말했더니 "그래요? 페북이나 인스타 피드를 보면 두 분은 문화적으로 윤택하게 사시던데, 그러면서 이런 소릴 하시면 곤란하죠"라는 것이었다. SNS를 통해 들여다보는 삶이라는 게 현실과 차이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그래도 돈이 있으니까 연극을 보러 다니는 거 아니겠느냐?'라는 입장을 고수하는 지인에게 아내는 한숨을 내쉬며 우리가 책이나 영화·연극·콘서트 등을 저렴하게 즐기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아울러 그가 언짢아하던 '문화적 소비'와 '좋은 식재료'를 제외한 다른 돈은 얼마나 깐깐하게 쓰는지도 털어놓았다. 실제로 아내와 나는 1월부터 지금까지 새 옷이나 새 신을 전혀 사지 않았다. 이런 궁상맞은 소리까지 해야 하나 싶으면서도 설명을 이어갔으나 '돈이 많아서 연극……'의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결국 그 지인과 나는 '모르는 남처럼,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헤어졌다.
이 지면을 빌려 말씀드린다. 연극이 돈이 많이 드는 문화생활인 건 맞지만 찾아보면 싸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일단 주변 인맥을 이용한 '지인 할인'이나 '배우 할인'이 있다. 그러나 그건 연극 생태계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일단 티켓 오픈 당일에 일찍 서두르면 티켓이 싸다. 그리고 연회비 5만 원만 내면 국립극단 유료회원이 될 수 있다. 국립극단 회원이 되면 일반 관객보다 좋은 자리의 티켓을 먼저 확보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네 장까지 40% 할인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아, 이미 본 공연 티켓도 버리지 마시라. 지난 티켓 보여주면 또 20~30% 할인해 주는 경우가 많으니까.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돈 많아서 연극 보러 다니는 게 아니다. 꿀벌이 꿀을 따야 하듯 우리는 연극이나 영화·뮤지컬을 봐야 살 수 있는 것뿐이다. 그리고 연극 보는 사람들이 돈은 없어도 내면은 '좀 있어' 보인다는 사실. 그러니 기를 쓰고 연극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