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압사 직전의 경험이 있다"... 일상이 된 한국형 '과밀문화'

입력
2022.11.0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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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압사 참사 후 시민들 '과밀화 공포'
"만원 마을버스 무서워 그냥 보내기 일쑤"
편의시설 분산 등 현실적 대안 모색해야

서울 양천구 목동에 사는 30대 여성 직장인 강모씨는 지난달 29일 발생한 ‘이태원 핼러윈 참사’ 후 출퇴근이 두렵다. 목동에는 일방통행로가 많아 마을버스가 콩나물 시루가 되기 일쑤인데, 끔찍한 재난을 접하고 ‘압사’에 대한 공포가 커진 것이다. 평소라면 지하철역까지 한 정거장 거리라 어떻게든 버스에 몸을 욱여넣었겠지만, 1일엔 버스 두 대를 그냥 보냈다. 강씨는 2일 “과밀 공포감이 엄습해 이젠 출근할 때 아예 10분 일찍 집을 나선다”며 “앞으로 인파가 몰리는 곳은 가급적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인구 밀도가 높은 우리나라 특성상 대다수 국민은 ‘과밀 문화’를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겨 왔다. 특히 가뜩이나 국토도 좁은데 서울, 경기 등에 인구가 집중돼 있다 보니 수도권 주민들은 좀처럼 과밀 현상을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156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압사 사고를 계기로 편의시설 분산 등 시스템 개선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6개 도시에 수도권 인구 72% 집중

1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수도권 거주 인구는 총 2,602만 명. 전체 인구의 50.4%를 차지한다. 급증까지는 아니지만 2017년 49.6%에서 꾸준히 비중이 느는 등 수도권 집중 현상은 해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과밀억제권역(서울 등 16개시)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면적은 수도권 전체의 17.0%에 불과하나 72.2%의 인구가 몰려 있다. 수도권 안에서도 인구 집중도 편차가 극심한 것이다.

국가 차원으로 범위를 넓혀도 한국의 인구 집중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인구밀도를 비교한 통계청 자료를 보면, 대한민국은 1㎢당 인구 516.2명을 기록했다. OECD 회원 38개국 중 가장 높고, 2위 네덜란드(419.0명)보다 100명이나 더 많다.

"압사 공포, 과밀 현상 다시 생각하게 돼"

사정이 이렇다 보니 수도권 거주자들은 매일 인구 과밀의 위험성을 안고 산다. 대표적 고통이 출퇴근 시 대중교통 이용이다. 또 한정된 즐길 공간에 비해 인구는 넘쳐나는 탓에 특정 이벤트라도 열리면 과밀 정도가 위험 수위에 다다르는 일이 다반사다. 혼잡률이 285%까지 이른다는 김포도시철도(김포골드라인) 이용객 김모(36)씨는 “객차가 사람으로 가득 찬 상태에서 기차가 출발하거나 정차하면 이용객들이 우르르 한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며 “지금까지는 그러려니 했는데, 이태원 참사를 목도한 뒤로는 과밀 현상을 숙명으로 치부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고 말했다.

수도권 인구 집중을 당장 해소할 수는 없는 만큼, 생활밀접형 시설을 분산 배치하는 등 현실적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신인철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참사가 확실히 젊은 세대에는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로 작용한 것 같다”면서 “당장은 혼잡 시설을 기피하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겠지만, 당국이 서울에 쏠린 생활편의시설(어메니티)을 지방으로 이전ㆍ확대하는 등의 행정시스템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이성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