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1일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이 권한과 책임을 구분할 게 아니라 미리 협업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태원 참사를 예방해야 할 책임 주체인 행정안전부와 경찰, 지자체가 서로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에 대한 질책으로 풀이된다. 참사 발생 약 4시간 전부터 시민들의 112 신고가 빗발쳤다는 경찰 보고를 받고서는 "한 점 의혹도 없도록 진상을 규명하라"고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진행된 국무회의에서 "주최 측이 있느냐 없느냐보다 국민의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며 "긴급을 요할 때는 이미 위험한 상황이 된다. 구체적 위험을 인지한 이후 통제를 시작하면 늦는다"고 강조했다고 대통령실 이재명 부대변인이 브리핑에서 전했다.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 참석자들에게 "모든 부처가 '안전 주무부처'라는 각별한 각오로 안전에 대한 근본적 대책을 세워달라"며 "무거운 책임을 가지고 하나하나 꼼꼼히 점검하라"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성적 대응이나 형식적 점검으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온전히 지킬 수 없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참사 발생 후 행안부와 경찰, 지자체를 향해 쏟아지는 비판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참사를 예방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음에도,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이상민 행안부 장관),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했다"(박희영 용산구청장), "주최 측이 없는 다중인파 사건에 대응하는 경찰의 관련 매뉴얼은 없는 것으로 안다"(홍기현 경찰청 경비국장) 등 '책임 회피성 발언'으로 여론의 비판이 확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장관과 박 구청장 등이 참사 발생 사흘 만인 이날 일제히 공식 사과에 나선 배경이다.
또 참사 발생 약 4시간 전쯤인 10월 29일 오후 6시34분부터 현장 상황에 대한 112신고가 접수됐다는 보고를 받은 윤 대통령은 "철저히 진상을 밝히라"며 경찰의 미흡한 초동 대처를 질책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진상 확인과 그에 따른 엄정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이같은 내용을 국무회의 전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도 개선과 관련해선 조만간 관계부처 장관과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안전시스템 점검회의'를 열어 논의할 계획이다. 윤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는 이른바 '크라우드 매니지먼트'라는 인파 통제의 중요성을 여실히 보여줬지만, 우리 사회는 인파·군중 관리에 대한 체계적 연구개발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드론 등 첨단 디지털 역량을 적극 활용해 기술을 개발하고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한다"며 "이번 대형 참사가 발생한 이면도로뿐 아니라 군중이 운집하는 경기장, 공연장에서도 확실한 인파 관리와 안전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또 "현장에서 심폐소생술을 비롯해 구호와 후송에 애써주신 시민들, 소방관과 경찰관 등 제복 공직자들, 의료진의 헌신에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언급하며 "세계 각국 정상과 국민께서 보여주신 따뜻한 위로에 대해 국민을 대표해 깊이 감사드린다"고도 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희생자 빈소를 찾아 유가족을 애도했다. 사고 발생 후 윤 대통령이 직접 빈소를 조문한 건 처음이다. 경기 부천의 한 장례식장에서 딸을 잃은 아버지를 만나 "뭐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며 위로했고, 희생자의 남동생에게 "아버지를 잘 보살펴 드리라"고 당부했다. 이어 서울의 한 병원 장례식장에서 부인과 딸을 잃은 또 다른 유가족을 위로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 직후 장관들과 이태원 녹사평역 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를 찾아 헌화했다. 전날 서울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 이은 것이다. 윤 대통령은 조문록에 "슬픔과 비통함 가눌 길이 없습니다. 다시 이런 비극을 겪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