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벌어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골목 일대에 들어선 불법 시설물이 통행로를 좁혀 이번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테라스와 가벽 등 불법 증축에 무허가 건물까지 들어서면서 좁아진 도로 탓에 발생한 병목 현상이 사고의 직접적 원인이라는 얘기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로 묶여 있던 지역 상권이 핼러윈 주간을 앞두고 풀리면서, 불법 시설물에 대한 규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해진 것 아니었느냐는 얘기도 나온다.
1일 용산구청 등에 따르면 참사가 일어난 서울 용산구 해밀톤호텔 옆 골목에는 호텔에서 설치한 폭 70㎝의 분홍 철제 가벽(假壁)이 골목을 따라 10m가량 이어져 있다. 이 가벽은 건축물대장에는 없는 불법 시설물이다. 호텔 측은 이 가벽에 지붕을 덮어 무단으로 사용하다 2016년 구청으로부터 불법 증축 지적을 받고 지붕만 철거했다. 지붕만 철거하면 불법 건축물 단속대상에서 제외되는 법의 허점을 악용해 호텔이 가벽을 그대로 둔 것이다. 가벽 때문에 서울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로 빠지는 골목은 폭이 4m에서 3.2m로 좁아졌다. 건축법상 도로는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 폭이 4m 이상 돼야 한다. 이송규 한국안전전문가협회장은 “좁은 도로에 불법 건축물로 도로 폭이 더 줄어든 데다 수많은 인파가 긴박한 상황에서 움직이려고 하다 보니 병목 현상이 가중돼 피해가 커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고 골목에는 무허가 건물도 있다. 골목 중간에 있는 한 건물은 건축물대장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해당 건물에는 의류를 판매하는 업체가 영업 중이다. 용산구 관계자는 "1981년 이전에 지어진 건물은 서울시 건축조례에 따라 단속 제외 대상이다"며 "당시 무허가 건물이 많아 양성화 작업을 하기 위한 조치였는데 현재까지 적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사고 골목으로 연결되는 세계음식문화거리에도 불법 시설물이 곳곳에서 통행을 막고 있었다. 사고 지점으로 이어지는 해밀톤호텔 본관 북측에 있는 A주점은 길이 17m, 폭 1m의 검은색 철골과 유리로 된 테라스를 도로 쪽으로 불법 증축했다. 이 테라스는 2011년 설치돼 현재까지 불법으로 사용돼 왔다. 지난해 5월 용산구청이 적발해 호텔 측에 시정 조치를 요구했지만 이번 참사 때까지도 시정되지 않았다. 구청 측은 “강제이행금을 부과하고 있으며 추후 조치가 없을 경우 강제 철거 등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테라스 바로 맞은편에도 길이 9m, 폭 1m의 핼러윈 행사 부스가 무단으로 설치됐다. 해당 부스도 호텔에서 운영하는 주점에서 설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당일 호텔 테라스와 행사 부스로 인해 5m 안팎의 거리 폭은 3m까지 줄었다.
사고 당일 현장 반경 100m 내 불법 시설물도 가득했다. 한국일보가 이날 확인한 불법 시설물만 10건이 넘는다. 사고 골목 북측에 있는 B주점도 도로 쪽으로 테라스를 증축해 설치했다. 해당 주점은 2014년 테라스와 관련 불법 증축으로 시정 명령을 받고 철거했다가 최근 다시 설치했다. 사고 현장과 연결된 세계음식문화거리에는 옥외 광고물과 야외 테이블, 벤치 등 영업홍보 시설물 수십 개가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현장에 있었던 직장인 김모(27)씨는 “거리에 철제 펜스를 둘러치고 테이블을 설치한 주점도 많았다”며 “불법 시설물과 사람들이 뒤엉켜 매우 혼잡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이태원 상권이 타격을 입으면서 사고 현장 인근으로 인파가 집중돼 피해가 커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부동산분석학회에 따르면 2020년 이태원 유동인구는 전년 대비 최대 73% 감소했다. 특히 사고 현장 인근인 세계음식문화거리 외에 경리단길 등에는 사실상 폐업한 주점이 속출하면서 상권이 크게 위축됐다. 이태원에서 부동산업을 하는 이모(54)씨는 “코로나19 이전에는 상권이 경리단길, 한남동 등으로 넓게 퍼져 있어 대규모 인파가 몰리더라도 갈 곳이 많았다”며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상권이 침체하면서 클럽이나 주점이 남아 있는 세계음식문화거리로 인파가 몰린 것 같다”고 했다.
대규모 인파가 모일 것을 예상하고도 상권 회복을 위해 지자체가 단속을 느슨하게 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사고 당일 핼러윈 분장을 해주고, 음식 등을 파는 노점도 100곳 이상 설치됐지만, 가로 정비 단속에 나선 용산구청이 사고 당일과 전날 이동 조치한 노점은 불과 14곳에 불과했다. 인근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나모(74)씨는 “이태원에서 장사한 지 40년째인데 그렇게 많은 노점은 처음 봤다”며 “줄줄이 늘어선 노점이 도로를 차지해 인파가 움직일 공간도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연합회 관계자는 “용산구청과 연합회 차원에서 옥외 광고물이나 야외 테이블 설치 등에 대해 점검 및 계도를 하긴 했지만 해당 업체들이 철수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