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핼러윈 참사 당시 구급차 진입이 지연되면서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지적이 높다. 일분일초가 아쉬운 상황에서 불법주차 차량 때문에 구급차가 오도가도 못했기 때문이다. 이태원 일대는 주말이면 불법주차 차량으로 몸살을 앓는 '교통지옥'이다.
한국일보가 참사 현장인 해밀톤호텔 앞 골목으로 진입하는 이태원로 일대의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인한 결과, 참사 당일 용산구청과 경찰 모두 불법주차 단속과 교통 통제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일보는 1일 사고 현장에서 300m 정도 떨어진 이태원로 인근 CCTV 영상을 입수해 분석했다. 해당 CCTV에는 한강진역에서 이태원역 방향으로 200m 도로 상황이 녹화돼 있다. 사고 장소로 가려는 구급차는 이 도로를 통과해야 한다. 영상엔 도로를 점령한 불법주차 차량들 모습이 그대로 담겼다. 사고 당일인 지난달 29일 밤 10시부터 2차선 도로 한 개 차선은 불법주차 차량들이 점령해 사실상 한 개 차로에서만 주행이 가능했다. 극심한 정체가 빚어진 건 물론이다.
구조작업 시작 직후인 오후 10시 52분쯤 구급차 한 대가 불법주차 차량 때문에 2분간 꼼짝도 못하다가 중앙선을 침범해 빠져나가는 모습이 포착됐다. 밤 11시 28분쯤에는 이태원역 방향으로 진행하던 버스가 유턴을 시도하다 불법주차 차량에 막혀 구급차 3대의 진입이 막히기도 했다.
소방당국 역시 구급차의 현장 진입이 늦어져 애를 먹었다고 토로했다. 소방청이 국회에 제출한 '이태원 사고 관련 소방 대응활동 현황'에 따르면 최초 신고 접수는 사고 당일 밤 10시 15분. 하지만 250m 떨어진 이태원 119안전센터를 출발한 선착대는 14분이 지나서야 도착했다. 현장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소방당국은 대응 1단계(관할 소방서 전부 출동), 2단계(인접 5, 6곳 소방서 전부 출동), 3단계(가용 소방력 총동원)를 연이어 발령했지만 교통정체와 밀집한 군중 때문에 제대로 속도를 내지 못했다. 소방청은 "(사고) 초기 많은 사상자 대비 구조·구급대원이 절대 부족했다"고 밝혔다.
이태원은 건축물 부설 주차장 설치 의무가 엄격하지 않던 시기에 들어선 '주차장 없는 건물'이 밀집한 지역이다. 수요에 비해 주차 공간이 턱없이 부족해 불법주차가 만연한 곳이다. 이태원 지역을 자주 오가는 택시기사 김모(63)씨는 "불법주차 단속이 엄격하면 장사를 못한다는 상인들 반발에 구청도 평소에 적극적으로 단속하지 않았다"며 "주말마다 불법주차 때문에 차량이 꽉 막혀 들어오기 겁나는 동네였는데, 언젠가 사달이 날 줄 알았다"고 혀를 찼다.
통상 불법주차는 시·군·구청이 단속한다. 그러나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경찰도 불법주·정차 차량에 대한 단속과 이동명령 권한을 갖고 있다. 원활한 교통을 위해선 경찰과 지자체가 긴밀히 협조해야 하는 이유다.
실제 참사 전날에는 순찰차와 교통순경이 도로를 통제하는 모습이 보였다. 순찰차는 밤 9시 35분부터 사고 당일 새벽 1시 14분까지 3시간 40분 동안 이태원로에 머물렀고, 효과는 상당했다. 불법주차 차량은 보이지 않았고, 교통 흐름도 비교적 원활했다. 그러나 참사 당일엔 용산구청과 용산경찰서 모두 손을 놓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태원쪽 교통 사정에 밝은 A(52)씨는 "평소에도 주취 폭행 시비로 구급차 출동이 흔한데, 그때마다 불법주차 차량 때문에 현장 출동이 지연됐다"며 "핼러윈에 사람과 차량이 몰릴 것을 예상하고도 불법주차에 눈감았다면 경찰과 용산구청은 참사의 공범"이라고 일갈했다.
용산구청과 경찰은 참사 당일 교통통제 업무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이렇다 할 해명을 하지 않고 있다. 서울경찰청은 사고 당일 교통경찰 26명을 용산경찰서에 파견했다고 밝혔지만, 파견 경찰들이 어디서 어떤 업무를 수행했는지에 대해선 입을 다물었다. 서울청 관계자는 "인력 운용은 일선서가 알아서 결정한다"며 용산서에 책임을 미뤘다. 본보는 용산구청과 용산서에 수차례 연락하고 문자메시지를 남겼지만 아무런 답변도 들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