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이 또" 세월호부터 이태원까지... 20대 덮친 '공포의 일상화'

입력
2022.11.0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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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 참사 목격한 세월호세대 '집단 트라우마'
"즐겨 찾던 이태원이 지옥으로"... 안전지대 어디에
끔찍한 이미지 실시간 공유돼... "충격 치유 악영향"

지난주에도 갔던 골목인데, 테러 현장처럼 변해 버린 사진을 보고 한동안 머리가 멍했습니다.”

직장인 황모(25)씨는 2014년 세월호 사태 당시 고교 2학년이었다. 그와 같은 나이의 친구 수백 명이 진도 앞바다에서 사라진 그날의 충격은 지금도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8년 후 황씨는 육지에서 비슷한 장면을 맞닥뜨려야 했다. 그는 31일 “해밀톤호텔 골목은 평소 친구들과 이태원을 가면 꼭 통과한 장소라 사고 소식을 접하고 현실감이 없었다”고 했다.

세월호부터 이태원까지. 청춘들이 비극의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청소년기에 겪은 ‘집단 트라우마(정신적 외상)’가 여전히 그들을 감싸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성장 과정에서 또래의 참상을 목격한 20대는 “언제든 대형 참사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세대성이 뚜렷한 대형 참사가 동일 세대에 연이어 발생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우리 사회가 이들의 정신 건강을 보듬어야 하는 이유다.

"내게도 일상의 공간이 죽음의 장소로"

지난달 29일 이태원 압사 참사 후 신원 파악이 완료된 154명의 사망자 가운데 20대는 103명으로 집계됐다. 30대는 30명이었고, 10대도 11명이나 됐다. 3년 만에 열린 ‘노 마스크’ 핼러윈 축제는 감염병 사태가 길어지면서 억눌려왔던 젊은이들의 해방감을 분출할 최적의 기회였다. 하지만 들뜬 열기는 고스란히 동일 세대의 재앙으로 되돌아왔다.

온라인을 통해 쉼 없이 소비되는 죽음을 목격한 20대는 “공포가 일상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두 참사 모두 ‘수학여행’과 ‘서울 도심’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시공간이 배경이다.

그래서 이들은 사고 당시 무질서는 있었을지언정 놀이 문화 자체를 폄하하는 일부 시각에 반대한다. 취업준비생 전모(25)씨는 “핼러윈 파티는 특정 세대의 일탈이 아니라, 그저 젊은층이 삶을 즐기는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때문에 세월호 참사 때만 해도 ‘내 또래가 수학여행을 갔다가 저렇게 됐다고?’ 여기던 막연함 공포감은 구체적 현실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이젠 주변에서 아무렇지 않게 사람이 죽어나가는구나’ 하는, 피부에 와닿는 위기감으로 변한 것이다.

트라우마 치유 첫 단계는 '자극적 정보 차단'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타인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 소통 통로는 젊은이들에게 충격을 달랠 조금의 시간도 허락하지 않는다. 직장인 김모(25)씨는 “사고 당일 이태원에 있던 친구 안부를 확인하려고 인스타그램에 접속했는데, 끔찍한 현장 사진과 불과 몇 시간 전 같은 장소에서 파티를 즐기는 사진이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졌다”며 “하던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이미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집단 트라우마를 우려하는 경고음은 울리고 있다. 대한신경정신건강학회 등은 전날 성명서를 내고 “여과 없이 유포된 현장 영상과 사진을 공유하는 행동은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다수 국민에게 심리적 트라우마를 유발한다”고 자제를 당부했다. 정성욱 세월호가족협의회 진상규명부장도 “4ㆍ16 세월호 세대와 이태원 참사 세대가 사실상 동일 집단인 만큼, 트라우마 형성 우려가 크다”면서 “책임을 더 이상 개인에게 돌리지 말고, 정부가 나서 집단에 정신적 충격을 줄 수 있는 환경을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나래 한림대 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그나마 희망적인 부분은 부정적 이미지 확산 속도와 비례해 자정 메시지도 빠르게 퍼지고 있다는 점”이라며 “이제야말로 트라우마에 노출된 시민과 집단을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정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