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원의 사망으로 정신병을 앓다가 사망한 육군 장교를 보훈 대상자로 인정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임관 전 질병이나 가족력이 없었다면 업무 수행과의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는 취지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A씨 유족이 경기북부보훈지청장을 상대로 낸 보훈보상 대상자 요건 비해당 결정처분 취소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1999년 육군 소위로 임관한 A씨는 작업 도중 휘하 부대원이던 병장 B씨가 사망하는 사건을 겪었다. A씨는 상급자로서 부하를 잘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충격으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A씨는 2010년 편집성 조현병 진단을 받았으며, 당시 진료기록에는 A씨가 사망한 병사의 환영과 환청에 시달리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A씨는 약물치료로 잠시 상태가 호전됐지만 다시 악화돼 1년 간 입원치료를 받았으며, 2015년 공무상 병으로 전역한 지 2년 만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
유족은 2019년 국가유공자 등록을 신청했지만 거절당하자, 보훈처 처분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은 보훈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2001년 사고 이후 망상을 겪은 사실은 인정되지만, 진료를 받은 시기는 2010년이기 때문에 과거 사고만이 원인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도 "2000년부터 조현병 진단을 받은 2010년까지 매년 공적과 관련해 표창장을 받았다"며 "수여 경력이 자연스럽게 설명되지 않는다"고 봤다.
대법원은 그러나 원심 판단이 잘못됐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A씨의 질병이 휘하 부대원의 사망사고에 대한 죄책감에서 비롯한 직무상 스트레스로 인해 악화됐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봤다. 대법원은 "특별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계속된 업무상 부담과 긴장이 감내하기 어려운 외적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해 질병의 발병과 악화에 기여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A씨가 근무가 힘들어 그만두고 싶다고 가족들에게 진술한 점 △A씨가 임관하기 전까지 병력이 없었고 가족력도 없는 점을 주된 판단 근거로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