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가고 있으니 출금자 신원을 밝혀달라."
2019년 2월 의정부경찰서에 A씨의 고소장이 접수됐다. 골프장을 운영하는 아버지에게 빌려준 계좌에서 2018년 11월부터 3개월간 1,865만 원이 빠져나갔다는 것이다. A씨는 경찰에서 "(아버지 회사) 관리부장은 결백하다고 하지만 통장을 본인 집에 보관했다고 한다"고 진술하고, 관리부장 이름과 연락처를 경찰에 알려줬다.
하지만 A씨 고소는 거짓이었다. A씨가 유흥비로 쓰려고 돈을 빼간 사실이 경찰 조사로 들통난 것이다. A씨는 돈이 사라진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허위 신고를 했다. A씨는 검찰 조사에서 "관리부장을 범인으로 생각하도록 거짓말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검찰은 A씨를 무고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비록 '성명 불상자'였지만, 형사처벌을 목적으로 거짓 고소를 했기 때문이다. A씨는 "피고소인(출금자)을 특정하지 않았고, 형사처벌을 받게 할 의도가 없었다"고 했지만 검찰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1·2심은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A씨 진술에 따라 관리부장을 비롯한 다른 사람이 용의선상에 오를 수 있었다"며 "A씨가 고소장을 작성하는 데 있어서 피고소인을 공란으로 뒀더라도, 타인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결과에 대한 미필적인 인식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A씨에겐 벌금 300만 원이 선고됐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성명 불상자에 대한 무고'는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원심이 유죄로 인정한 것은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실질적 불이익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