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아시아영화제 오프닝 표가 매진이어서 놀라웠어요. 영화제가 많이 알려지고 있다는 게 영국에서 50년 산 사람으로서 너무 뿌듯합니다."
백발이 성성한 70대 한인 교포 손선혜씨는 올해 7회째를 맞은 '런던아시아영화제(LEAFF)'의 성과에 놀라워했다. 같은 한국인이 개최하는 영화제라 힘을 실어주기 위해 매년 참석하고 있다는 손씨. 지난 21일 오후 6시(현지시간) 영국 런던 레스터스퀘어 오데온 럭스 극장에서 열린 영화 '오마주' 시사회에도 참석해 배우 이정은과 관객들의 대화에도 귀를 기울였다.
이날 '오마주' 시사회에는 한국인보다 현지 팬들이 더 많은 자리를 차지했다. 영화가 끝난 뒤 관객과의 대화 시간 때에도 현지인들은 신수원 감독과 이정은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영화는 저예산 영화를 만드는 여성감독 지완(이정은)이 60년대 활동한 여성 영화감독의 작품을 복원하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담았다. 50년이라는 세월을 관통한 두 여성 감독이지만 여성 영화인으로서 겪는 고초는 여전히 비슷하다는, 씁쓸한 메시지가 울림을 준다.
현지 관객들도 이런 점을 짚었다. 이들은 "신수원 감독님이 어떻게 30년이라는 시간을 버텼는지 궁금하다", "한국에서 영화를 제작하는 환경은 어떠한가", "이정은씨가 이 영화에 출연한 이유는 무엇인가" 등을 적극적으로 물었다.
대체로 무거운 질문들이 이어지자 신 감독은 분위기를 바꾸려고 했다. 그는 "이정은씨는 제가 드린 시나리오를 보시고 2시간 만에 출연을 결정하셨다고 한다"면서 "이정은씨의 첫 주연 영화인데, 그럼 이정은씨는 어떻게 30년을 버텼나"라고 질문했다.
그러자 이정은은 "30년을 버틴 건 아마도 결혼을 안해서?"라고 말해 상영관을 가득 매운 관객들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러면서 자신도 역시 영화연출을 전공했다며 "당시 영화를 만든다면서 많이 말아먹었다"고 전해 또 한번 관객들을 웃겼다.
이정은은 다시 한번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모든 행사가 끝난 뒤 관객 한 명 한 명과 사진을 촬영해 준 것이다. 특히 지체장애를 가진 영국 청년이 한국말로 이정은의 영화를 너무 좋아해 그가 출연한 영화는 거의 봤다고 전해 감동도 선사했다. 이정은은 "한국말을 너무 잘하는데 어떻게 배웠냐"고 물었고, 이 청년은 "영화를 보면서 배웠다"고 말해 주변을 따뜻하게 했다.
이정은 외에도 이정재와 임시완도 현지 관객들과 만나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이정재는 자신의 첫 연출작 '헌트'로, 임시완은 '비상선언'을 선보이며 영국 관객들의 호기심을 끌었다. 한국일보와 만난 이정은은 "이렇게 많은 분들이 영화를 보기 위해 찾아주실지 몰랐다. 너무 감사하다"고 전했다. 임시완도 "이번 영화제에 처음 초청받았는데 너무 좋은 경험이었다"며 "좋은 영화들에 많이 출연해 매번 오고 싶을 정도"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정재와 이정은, 임시완은 지난 19일 8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개최된 개막식에서 각각 '명예상', '리프 베스트 배우상', '리프 라이징 스타상'을 수상했다. 개막작인 '헌트'는 상영관 좌석 800석이 일찌감치 매진돼 눈길을 끌었다. 영화제는 30일까지 런던의 중심가 레스터스퀘어 오데온 극장 등 런던 시내 주요 극장 5곳에서 한국영화를 비롯해 중국, 일본, 홍콩 등 50여 편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영국에선 소문자로 bbq를 썼습니다. 대문자 BBQ라고 하면 '바비큐'로 아는 현지인들이 많으니까요. 그래서 나름대로 차별화를 둔 셈이죠."
런던에서 만난 정해평 BBQ글로벌 대표이사는 런던아시아영화제와 손잡고 현지에 BBQ치킨을 선보인 게 "모험"이라고 말했다. 영국에는 아직 BBQ가 진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장 하나 없는 불모지에서 런던아시아영화제 공식 스폰서로 나섰으니 모험이 아니고서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는 셈.
BBQ는 이번 영화제 주요 행사 때마다 얼굴을 내밀었다. 지난 19일 영화 '헌트'의 감독 겸 배우 이정재를 포함해 150여 명의 영화인들이 참석한 '오프닝 갈라쇼', 20일 영화 '비상선언'의 배우 임시완과 '오마주' 이정은 등 200여 명이 참여한 '배우의 밤'에 한국식 치킨을 선보였다. 그야말로 현지에 브랜드 이미지를 심는 데 주력했다.
정 대표는 직원 4명을 현지에 급파해 제대로 된 치킨맛을 선보이기로 했다. 이를 위해 직원 2명은 하루종일 서서 닭을 튀기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현지인들에게 '겉바속촉(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치킨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기에 어찌보면 당연한 선택이었는지 모른다. 직접 튀기는 게 아닌 이상 눅눅해서 맛없는 치킨이 나왔을 게 불보듯 뻔했다.
그럼에도 '굳이' 영화제와 함께 BBQ를 알리기로 한 건 미래를 위한 도전이었다. 정 대표와 동행한 강형석 BBQ글로벌 운영본부 팀장은 "미국에는 매장이 많아서 이런 행사를 해도 이상하지 않은데, 매장 하나 없는 영국에서 치킨 행사를 하는 건 그야말로 도전"이라고 했다.
삼양식품도 영화제 공식 스폰서가 되면서 런던에 소개됐다. 불닭볶음면은 이번에 삼양이 런던에 야심차게 소개한 제품이다. 삼양도 오프닝 갈라쇼에서 참석자들에게 불닭 브랜드 제품과 굿즈를 제공하는 등 브랜드를 알리는 데 집중했다.
30일까지 열릴 런던아시아영화제는 말미로 갈수록 한국의 정취를 더하고 있다. 특히 '서울 나잇' 프로그램은 영화제 개막과 동시에 오데온 럭스 레스터스퀘어 극장에서 진행되고 있는 행사다. 레스터스퀘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 극장 2층에는 서울의 다채로운 모습을 이미지로 채워 '서울 나잇'으로 꾸몄다. 현지 영화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또한 이곳에는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부스도 마련해 현지인들의 발길을 끌었다. 빨간색 의상은 입은 참가자들과 함께 사진을 촬영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드라마를 통해 한국을 알고 있는 현지인들에게 서울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이번 행사는 영화제와 서울관광재단이 협업해 이뤄졌다. 영화제 측은 '서울 나잇'을 통해 서울의 맛집 등 여행 정보를 담은 서울관광 홍보 책자를 배포했다. 또한 서울 미리 가보기 부스를 마련해 서울을 상징하는 소품을 들고 스티커 사진을 찍는 이벤트도 열었다. 서울의 관광 명소를 배경으로 '인생샷' 촬영 기회도 제공했다. 현지인들은 서울 여행을 약속하고 스티커 사진을 찍어 기념하기도 했다.
본격적인 팬데믹(전염병 대유행) 이전인 2019년에는 '서울의 지붕 밑', '서울의 휴일' 등 서울이 배경인 고전 작품을 소개하는 특별전을 마련하기도 했다. 1960년대 서울의 모습과 당시 결혼 풍속 등을 전해 현지인들의 관심을 받았다. 이를 시작으로 서울관광재단과 영화제 측은 서울을 영국 등 유럽에 알려왔고, 올해 '서울 나잇'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영화제 측은 "당시 고전 작품으로 서울의 과거 모습을 처음 접한 영국 관객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현재 '기생충' '오징어 게임' 등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 대한 전 세계인들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전혜정 런던아시아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유럽 관객들이 한국 영화나 OTT 플랫폼의 K콘텐츠를 보고 서울을 궁금해하기에 마련된 기획"이라고 말했다. 김은미 서울관광재단 글로벌마케팅팀장은 "앞으로 문화 콘텐츠와 협업해 현지에 효과적으로 서울관광의 매력을 알리는 활동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