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점 찍더라도 5%대 물가 계속될 듯”... 고물가 불가피

입력
2022.10.31 09:30
15면
<3> 고물가 신음
연초 이후 17% 이상 뛴 환율
유가 배럴당 110달러 전망도
'킹달러' 현상, 물가 압박

소비자물가에 시차를 두고 반영되는 주요 경제지표가 상승 전환하면서 ‘물가와의 전쟁’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연고점을 돌파한 환율과 출렁이는 국제 유가 등 물가 불안을 부추기는 요소는 산적해 있다. 상당 기간 5%대 고물가 충격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주는 선행 지표의 반등은 향후 소비자물가 전망을 어둡게 하는 부분이다. 생산자물가지수만 해도 올해 8월 하락하며 진정되는 듯 보였으나 9월 다시 상승으로 돌아섰다. 전기·가스요금이 연이어 오른 탓이다.

생산자물가와 함께 소비자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수입물가 역시 지난달 24% 급등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수입물가는 소비자물가에 1, 2개월 안팎의 시차를 두고 반영된다”고 말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0월 물가가 당초 경계감을 가졌던 것보다 낮은 수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지만, 물가 상승폭이 다시 확대될 불씨는 여전하다는 얘기다. 물가 상승률은 7월(6.3%) 정점을 찍은 뒤 8월 5.7%, 9월 5.6%로 누그러지긴 했다.

물가 불안을 자극하는 최대 변수는 고환율이다. 1월(1,195.3원)만 해도 평균 1,200원을 밑돌던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1,396.5원)까지 약 17% 뛰었다. 이달 들어선 1,400원을 훌쩍 넘어 거래되고 있다.

환율이 상승하면 원화로 환산한 물건 가격이 올라간다. 원·달러 환율이 1,100원일 때 100달러짜리 물건을 구입하려면 11만 원을 내면 되지만 환율이 1,200원으로 오르면 12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 강삼모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환율로 생산자물가가 상승하고 소비자물가 역시 덩달아 뛰게 된다”고 말했다. 공격적인 긴축 정책을 펴는 미국이 다음 달 또다시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을 가능성이 커진 것도 고환율에 기름을 붓는 요인이다.

배럴당 100달러 돌파 우려가 커지는 국제 유가도 문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오펙)와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오펙 플러스(OPEC+)’가 다음 달부터 원유 생산량을 하루 평균 200만 배럴 줄이기로 한 점,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와 미국·유럽연합(EU)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는 점 등은 국제 유가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최근 ‘2022 하반기 국제 원유 시황과 유가 전망’ 보고서를 통해 우크라이나 사태 등 지정학적 사건으로 공급 차질이 발생할 경우 올해 하반기 두바이유 가격이 배럴당 111.75달러, 내년 상반기 109.74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유가 급등은 물가 상승→금리 인상→경기 위축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럴 경우 안전자산인 달러에 수요가 쏠려 ‘킹달러’ 현상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 고환율과 고유가가 다시 한번 휘몰아치며 국내 물가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얘기다. 성 교수는 “여러 위기가 겹쳐 물가에 악영향을 주는 상황”이라며 “물가 상승률이 정점을 찍고 내려온다고 해도 5% 안팎의 고물가 행진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3고 1저' 지뢰밭 위 한국경제] 글 싣는 순서
<1> 고금리 비명 <2> 고환율 비상 <3> 고물가 신음 <4> 저성장 수렁 <5> 복합위기 진단


세종= 변태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