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의 계절이 시작됐다. 제95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은 내년 3월 12일(현지시간) 열린다. 아직 4개월 넘게 남았으나 예측 기사들이 미국에서 조금씩 나오고 있다. 오스카 후보가 될 만한 영화들이 앞다퉈 개봉할 예정이기도 하다. 4, 5년 전까지만 해도 오스카는 그들만의 경쟁이자 잔치였다. 한국 영화 관계자와 영화팬들은 그저 시상식 날에만 관심을 둔 정도라고나 할까.
한국 영화계에 오스카는 난공불락의 성처럼 보였다. 2018년까지 한국 영화에 시선을 두지 않았다. 한국 영화는 외국어영화상(현재 국제장편영화상) 예비 후보조차 오른 적이 없다. 2019년 이창동 감독의 '버닝'(2018)이 최초로 예비후보 명단에 들었다. 하지만 최종 후보에 끼지는 못했다.
진한 아쉬움이 남았던 때가 있기도 하다. 2017년이다.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2016)는 당시까지만 해도 한국 영화로서는 오스카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작품이다. '아가씨'는 미 일간 뉴욕타임스와 연예매체 할리우드리포터 등 주요 매체가 꼽은 2016년 최고 영화 10선에 들어갔다. 로스앤젤레스 영화평론가협회와 샌프란시스코 영화평론가협회 등 여러 미국 평론가 단체로부터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오스카 전초전 중 하나인 영국 아카데미(BAFTA)상 시상식에서도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3년 뒤 '기생충'이 걸었던 길과 닮은꼴이었다.
하지만 '아가씨'는 오스카 문턱을 넘지 못했다. 원천적으로 후보가 될 수 없었다. 오스카는 각 국가 영화기관으로부터 그 나라를 대표하는 영화 1편씩을 추천받아 이 중에서 예비 후보와 최종 후보를 선정한다. 당시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심사위원회를 구성해 한국 대표로 선발한 영화는 '밀정'(감독 김지운)이었다. '아가씨'는 국내 예선을 통과하지 못했으니 본선은 아예 갈 수 없는 처지였다. 만약 심사위원회가 '아가씨'의 손을 들어줬다면 한국 영화의 역사가 달라졌으리라 생각한다.
2020년 오스카의 높디높은 장벽이 한 번에 무너졌던 걸 우리는 안다. '기생충'의 오스카 4관왕(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위업은 한국 영화사뿐만 아니라 세계 영화사에서 굵은 글씨로 남을 만하다. '미나리'(2020)의 배우 윤여정이 지난해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면서 한국인이 오스카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일이 이젠 낯설지 않게 됐다. 한국 영화가 오스카를 향해 가는 길은 넓고 평탄해졌다.
내년 한국을 대표해 오스카에 도전하는 영화는 '헤어질 결심'이다. 박찬욱 감독의 최신작이다. 지난 8월 영진위에 의해 국내 공식 후보로 선정됐다. 지난 14일 미국에서 개봉하며 영화 알리기 작업에 들어갔다.
오스카 레이스는 아직 본격화되지 않았으나 '헤어질 결심'은 미국에서 오스카 주요 후보로 언급되고 있다. 미국 연예매체 버라이어티는 지난 26일 '오스카 레이스 영화들 한눈에 보기'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남녀배우상 등 주요 부문에 최소 2개 이상 후보로 오를 만한 영화 37편 중 하나로 '헤어질 결심'을 꼽았다. 연말이 다가오고 해가 바뀌면 오스카를 향한 경쟁은 뜨거워지고 후보군에 오를 영화는 줄어들게 된다. '헤어질 결심'은 어떤 결과를 낼까. 오스카는 어느덧 남의 잔치가 아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