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못 받고 일하는 부여 하수처리 노동자들... 지자체는 까맣게 몰랐다?

입력
2022.10.27 11:00
[중간착취의 지옥도, 그 후]
<39>임금 떼먹고 회생 신청한 위탁업체
부여군은 지급했지만, 노동자는 못 받아
설비 수선비 등도 못 받아 방수수질 위험 
원청의 임금전용계좌 지급 제도 절실해

충남 부여의 공공하수처리시설. 이곳에서 악취와 싸우며 부여 군민들이 배출하는 각종 생활하수를 처리하는 44명의 노동자 중 26명은 지난 8월부터 월급을 받지 못한 채 일하고 있다. 부여군은 임금을 내려보냈지만, 노동자들이 소속된 민간위탁업체 A사가 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채 기업회생 신청을 하면서다.

A업체는 부여군 공공하수처리시설 운영의 60%를 맡아 노동자들의 임금체불뿐 아니라 자칫하면 업무 자체가 멈출 수 있다. 원청인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이런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가 이후로도 '방법이 없다'면서 손을 놓고 있다.

27일 한국일보 취재에 따르면 A업체는 이달 5일 기업회생을 신청했고, 채권자의 가압류·가처분 등 개별적 권리행사를 금지하는 포괄적 금지명령이 내려지면서 노동자들의 임금은 물론 협력업체 등도 대금을 받을 길이 막혔다.

부여군의 경우 44명의 노동자가 군내 40여 곳의 처리장의 설비실에서 기계와 장비를 관리하면서 하숫물을 거른다. A사 소속의 한 노동자는 "임금뿐 아니라 설비 수선비가 지급되지 않아 기계나 장비가 고장 나도 수리할 수 없다"면서 "현장운행 차량도 연료를 넣지 못해 마을 하수도 시설의 슬러지(하수를 처리하고 남은 찌꺼기) 이송이 어려워 방류 수질도 책임질 수 없게 됐다"고 전했다.


노동자들은 기업회생 신청 이전인 8월부터 임금을 받지 못했으나, 부여군청에서는 이를 파악하지 못한 채 기업회생 신청 이전까지 A사로 운영비를 꼬박꼬박 보냈다. 이후 임금체불 사실이 드러났지만 원청인 부여군청에서는 민간위탁업체에 지급할 비용은 보냈으므로 따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입장이다. 부여군 관계자는 "노동자 인건비를 포함한 비용을 (군청에서는) 다 내보냈는데 A사에서 주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이 A업체는 부여뿐 아니라 충남 공주, 충북 청주, 충북 괴산 등에서도 공공하수처리시설 민간위탁을 맡아 향후 피해는 더 커질 수 있다. 부여군 관계자는 "기업회생 신청을 했다고 계약을 해지할 수는 없다"면서 "A사에 민간위탁을 준 사정이 비슷한 지자체들과 정보를 공유해가며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두 달간 받지 못한 임금은 관할 노동청에 신고해 뒀지만, 문제는 언제 지급이 재개될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부여군 공공하수처리시설의 노동자들은 업무를 이어가고 있다. '군청'이라는 지자체에서 일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A업체 소속 노동자는 "저희가 일반 회사가 아니라 군청에서 일감을 받은 거 아니냐"며 "군청이 사업비를 가지고 있으니 의지만 있다면 지급이 가능하지 않나"고 물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법적으로 지자체의 책임은 없지만, 달마다 사업비를 결제하는 만큼 관할 부서에서 지도·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라면서 "최소한 인건비는 제대로 나가도록 지자체에서 감시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9년 정부가 마련한 '민간위탁 노동자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지자체는 업무 민간위탁 시 노무비 전용계좌를 만들고 제대로 지급하는지 파악하도록 돼 있지만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가이드라인이 권고 사항에 불과해서다.

이런 중간착취를 막을 법안이 계류 중이지만 국회 논의가 미뤄지고 있다. 국회에서 발의된 용역업체 노동자의 임금을 원청이 임금전용계좌로 지급하도록 하는 근로기준법과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박대수 국민의힘 의원·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 발의) 등이 통과됐다면 이런 임금 체불은 막을 수 있었다.

전혼잎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