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혐오 발언과 극우 행보로 논란을 일으킨 세계적인 힙합 스타이자 프로듀서, 패션 디자이너인 예(Ye·개명 전 이름 카녜이 웨스트)가 독일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에서도 결국 퇴출됐다. 아디다스는 예와 지난 10년간 협력 관계를 맺고 컬래버 상품을 선보여 왔다. 캐시 카우였던 아디다스의 손절로 예는 순식간에 ‘억만장자’ 지위를 잃게 됐다.
25일(현지시간) 아디다스는 성명을 통해 “철저한 검토 끝에 예와 파트너십을 즉시 종료하기로 결정했다”며 “예와 협업한 제품 생산을 중지하고 예와 그의 회사에 대한 대금 지급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아디다스는 반유대주의 및 모든 종류의 증오 발언을 용인하지 않는다”며 “최근 예의 발언과 행동은 용납할 수 없으며 혐오스럽고 위험하다. 다양성과 포용, 상호존중과 공정 등 아디다스가 추구하는 가치에 위배된다”고 강조했다.
이번 결정으로 아디다스는 올해 최대 2억5,000만 유로(약 3,550억 원)가량의 순이익 손실을 입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주가도 6% 떨어졌다. 글로벌 투자은행 제프리스의 제임스 그르지닉 분석가는 “아디다스의 수익 하락은 예와의 협업 브랜드가 얼마나 수익성이 높았는지 보여 준다”며 “궁극적으로 내년도 수익 창출에도 도전적 요인들이 증가했다”고 진단했다.
나이키에 밀려 만년 2인자였던 아디다스는 2013년 예와 손잡은 뒤 부활의 신호탄을 쐈다. 아디다스와 예가 2015년부터 함께 선보이고 있는 ‘이지 부스트(Yeezy Boost)’ 운동화 시리즈는 아디다스의 대표 상품으로, 20억 달러(약 2조8,540억 원)에 달하는 연간 수익을 내온 것으로 추정된다. 아디다스 연간 매출의 10%에 해당하는 액수다. 이에 아디다스는 끝까지 계약 해지를 주저했다.
예도 아디다스 덕분에 부를 쌓았다. 스위스 투자은행 UBS그룹 보고서에 따르면, 예는 2015년 이후 약 4년간 로열티와 마케팅 수수료로 5억 달러(약 7,134억 원) 이상을 벌어들였다. 미국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이지 부스트’ 운동화의 로열티 가치가 17억5,000만 달러(약 2조5,000억 원)에서 최대 30억 달러(약 4조2,8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평가했다.
최대 수입원이었던 아디다스로부터 버림받으면서 예는 막대한 재산을 잃게 됐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20억 달러 자산가인 예가 아디다스와 관계를 끊으면 순자산이 10억 달러 미만으로 곤두박질치게 된다”며 “억만장자(순자산 10억 달러 이상) 명단에서도 탈락할 것”이라고 전했다.
예의 발목을 잡은 건 ‘험악한 입’이다. 예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가깝게 지내는 등 정치적으로 보수 성향이긴 했으나, 최근 들어 ‘우클릭’ 언행이 선을 넘었다. 결정적으로 이달 8일 트위터에 쓴 “유대인에게 ‘데스콘3(death con 3)’를 가할 것”이라는 글이 문제가 됐다. 군 방어준비 태세를 뜻하는 ‘데프콘’을 ‘죽음(death)’으로 변형한 반유대주의 발언으로, 트위터는 즉시 이 글을 삭제했다. 전처 킴 카다시안까지 “유대인을 향한 끔찍한 폭력과 증오를 끝내라”고 비판했다.
예는 이달 초 프랑스 파리 패션쇼에 ‘백인 목숨도 소중하다(White Lives Matter)’는 문구가 새겨진 옷을 입고 등장해 패션계를 발칵 뒤집었다. 백인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숨진 미국 흑인 청년 조지 플로이드를 기리는 인권운동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를 비꼰 인종주의적 표현이었다. 예는 플로이드가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 복용으로 숨졌다는 허위 주장을 늘어놓아 플로이드 유족에게 명예훼손으로 고소도 당했다.
참다 못한 문화계는 물론 금융계, 패션계까지 줄줄이 예를 손절하고 나섰다. 2016년부터 예와 일한 할리우드 대형 기획사 크리에이티브아티스트에이전시(CAA)는 지난달 계약을 종료했고, 드라마 제작사 미디어라이츠캐피털(MRC)은 예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완성했지만 개봉하지 않기로 했다. 대형은행 JP모건 체이스도 예와 사업 관계를 끊겠다고 통보했다. 명품 브랜드 발렌시아가는 협업을 중단했을 뿐 아니라 파리 패션쇼에서 찍은 예의 영상과 사진도 모두 삭제했다. 지난달 예와 관계를 끝낸 미국 의류업체 갭도 각 매장에서 ‘이지’ 브랜드 제품을 철수하기로 했다.
예를 둘러싼 논란은 이제 이념 논쟁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23일 로스앤젤레스 고속도로에선 극우단체들이 “예는 유대인에 관해서 옳다”는 문구를 걸고서 지나가는 차량에 ‘나치식 경례’ 인사를 하는 시위를 벌였다. 도심에는 반유대주의 전단지도 배포돼 당국이 조사에 나섰다. 미국 최대 유대인단체 명예훼손방지연맹(ADL) 조너선 그린블랫 회장은 “극단주의 단체들이 혐오적 의제를 확산시키기 위해 예의 발언을 찬양하고 홍보하고 있다”며 “미국에서 반유대주의가 확산하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