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뉴스를 봐도 심드렁하다. 연일 국정감사 기사가 쏟아지는데도 중요한 문제가 드러나서 분노하게 되거나 따끔한 질책이 있어 눈이 번쩍 뜨이는 장면이 잘 보이지 않는다. 정당이 서로 화를 내며 다투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한 발자국 떨어져 있는 시민으로서는 그들의 첨예한 논리까지 이해해 보려는 의지가 쉬이 들지 않는다. 정치를 보면서 화나거나 슬프거나 무력한 감정을 느끼는 것도 이입할 만한 장면이 있을 때의 이야기이지 요즘은 통 심드렁해서 문제다.
최근에 정치가 원래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하는 좀 특이한 사람들이 나타났다. 정치개혁 2050이라는 모임인데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 서로 다른 정당 소속의 젊은 정치인이 모였다는 점이다. 국민의힘 정치인도 있고 더불어민주당 정치인도, 정의당 정치인도 있다. 소속은 달라도 2050년의 정치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의기투합해서 모임을 꾸렸다. 앞으로 기후, 인구, 지방, 노동 등 정치가 꼭 다뤄야 하지만 외면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매달 해법을 놓고 연속 토론을 진행할 거라고 한다.
우리는 정치가 대화와 타협의 산물이라고 배웠다. 정말로 중요한 문제가 있다면 정당을 넘어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정치인도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하지만 현실 정치는 다르다. 적어도 최근 수년 동안 정당이 입장 차이를 넘어서 공동의 목표를 구상하거나 서로가 가진 방법론을 촘촘하게 따지는 장면은 거의 보기 어려웠다. "지금의 정치는 정쟁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며 "싸워도 우리의 미래를 놓고 싸우는 정치를 해보자"고 했다는 모임의 탄생 배경을 응원하고 싶은 이유다.
이 모임의 구성원 면면에도 새로운 고민이 엿보인다. 이동학 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전 세계에서 쓰레기가 거대한 산을 만들고 있는 현실을 추적해 '쓰레기책'이라는 르포를 썼다. 전당대회 연설에서 "국가 안보를 위해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한다"고 발언한 김용태 국민의힘 최고위원도 모임 일원이다. 플랫폼 노동이란 말이 생기기 전부터 배달 라이더를 속도 경쟁에 노출시키는 30분 배달제 폐지를 이끌었던 조성주 전 정의당 정책위부의장 등 일곱 명의 젊은 정치인이 주축이 됐다. 여성이 없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지만 그저 당이 다른 사람이 모인 것을 넘어 자기만의 관점과 현장을 가지고 정치를 하고 있는 인물이란 점에 기대를 걸고 싶다.
이 모임의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는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이다. 당대표가 누구인지에 따라 줄줄이 같은 편인 사람이 공천을 받는 관행을 넘어서 유권자가 개입할 수 있는 투명하고 규칙적인 시스템이 생겨야 진정으로 권력 논리가 아니라 유권자의 삶에 신경 쓰는 정치인이 나올 수 있어서다. 여기까지 듣고 보면 '이게 정말 되겠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정치가 너무 많은 타협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면 새로운 목소리에 기대를 걸고 싶어진다. 이 모임에서 정말 멋진 변화를 만들어 주면 좋겠다. 작게라도 새로운 과정을 통해 결과를 맛본 사람들은 앞으로도 새로운 대안을 상상하기 쉬워진다. 정당이 달라도 같은 문제 기반을 가지고 해법을 고민할 수 있고 다른 정당에서 잘한 점을 배우고 못한 점은 나눌 수 있다는 사례가 생기면 그 다음에는 이것이 당연한 선택지가 된다.
요즘 정말 많은 정당이 '민생'을 말한다. 개인의 삶 깊숙이 들어가지 않고 정치의 생존을 말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가 원래 그렇지'라고 포기해 버리는 날들이 조금씩 쌓여서 모두의 마음에 단단한 지층이 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더 기대를 걸게 되는 쪽은 대단한 선언보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만나서 토론하겠다'는 실천적인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