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조력자살을 지켜본 저는 제도 도입을 반대합니다"

입력
2022.10.22 13:00
한국 교민 의사조력자살 지켜본 신아연 작가
"고통은 명분, 의사조력자살도 자살일 뿐"
"고인 '외롭다'며 삶의 의미 잃어"
"합법화하면 얼마든지 악용될 수 있어"

"스위스에서 지인의 의사조력자살을 지켜봤지만, 저는 이 제도 도입에 반대합니다."

극심한 고통을 겪는 말기 환자가 의사의 도움을 받아 삶을 마무리하는 의사조력자살을 도입하는 내용의 법안이 국회에서 발의된 데 이어 제도 도입을 촉구하는 정책제안서가 국가인권위에 접수됐다는 소식을 전했던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작성자는 최근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라는 책을 펴낸 신아연(59) 작가였다. 시민들 사이에서도 찬성 의견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정작 지켜봤던 사람은 반대한다니, 왜 그럴까? 신 작가를 만나 어떻게 의사조력자살에 동행하게 됐고, 반대하게 됐는지 들어봤다.

신 작가는 최근 본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지난해 8월 스위스 바젤에서 호주 국적의 한국 교민 A(당시 64세)씨가 의사조력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모든 과정을 지켜봤다"고 털어놨다. 의사조력자살은 국내에서 불법이지만, 그의 국적이 호주라 이런 경험이 가능했다. 호주의 몇몇 주는 이 제도를 허용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오랜 독자였다"고 소개한 A씨를 알게 됐을 때만 해도 서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이였다. 아들이 어릴 때 이혼 후 홀로 이주한 호주에서 20년간 사업을 했던 A씨는 폐암으로 두 차례 수술을 받았으나 재발한 말기 환자였다.

"이메일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처음 대화했을 때는 주치의가 예상한 여명을 석 달 정도 넘긴 상태였죠. '죽기 전 마지막 부탁이니 마지막 길을 함께 해달라'고 했어요. 고민 끝에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 동행했어요. A씨의 배우자, 아들, 조카, 처제, 사회에서 오랫동안 알고 지낸 지인도 함께했습니다."

스위스 현지에서 처음 만난 A씨는 예상외로 정정했다고 했다. A씨의 결심을 되돌리려 여러 차례 시도했던 일행은 스위스 현지에서도 다시 설득했으나 소용없었다. 오히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기 전 제자와 대화를 나눴듯 일행과 와인을 마시며 인생을 논했고, 의사와 면담 후 최종적으로 서명하고는 '저승사자가 다녀갔다'고 농담할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그분은 너무 확고해 우리를 압도했고, 나중에는 우리가 끌려가는 상황이었어요."

가장 강렬했던 경험 '의사조력자살'

마지막 순간에도 의연했다. 절차에 따라 카메라 앞에서 "나는 아프고 죽길 원하며 죽을 것이다(I'm sick, I want to die. I will die.)"라고 말한 뒤 관계자가 약물 팩을 걸고 "마음의 준비가 되면 밸브를 손수 돌리세요. 수초 안에 편안히 잠드실 겁니다"라는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밸브를 돌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설명하던 직원도 흠칫 놀랐고, 우리의 입에서도 짧은 탄식이 나왔어요. '아 졸리다'며 5~8초 남짓한 사이에 고개가 힘없이 옆으로 떨어졌고, 입가에는 희미하게 미소가 떠올랐어요. 제 인생을 통틀어 가장 강렬한 체험이었죠."

그런데 전 과정을 지켜본 신 작가는 "동행했을 때는 죽음을 긍정적으로 보고, 고인의 죽음을 존중하는 분위기였는데, 한국에 돌아와서는 이건 아닌 것 같았다"며 "조력사(의사조력자살)는 명백히 자살"이라고 말했다. 생전 발언을 토대로 그분의 의중을 곱씹어 생각해보니 의사조력자살의 취지인 육체적 고통(경감)보다는 삶의 의미를 찾지 못했던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특히 그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외롭지 않았다면 외국을 떠돌며 뿌리 없이 살지 않았다면, 가족 기반이 끈끈하고 유대가 깊고 튼실했다면 이런 결정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 말이 신 작가의 귓가에 맴돌았다. 또 "우리나라에도 안락사가 필요하니까 자신의 죽음이 알려져야 된다"면서도 "아무도 나를 그리워하지 않을까 두렵다", "잊지 말아달라"라고 여러 차례 얘기한 점도 마찬가지다. (그가 책을 쓴 이유이기도 하다.)

"살릴 수 있었는데 후회... 유족에게도 일반 죽음보다 더한 고통"

"(이승의 삶에) 정말 아무 미련이 없었다면 '잊지 말라'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통증은 표면적인 이유였고, 더 이상 살려는 '의욕'이 없었던 것 같아요. 통증이 문제였다면, 돈도 있었으니까 호스피스병동에 입원했겠죠. 내면에 깊은 외로움이 있었어요. 계속 '그분의 마음을 더 깊이 읽었어야 했는데', '내가 한 사람 살릴 수 있었는데'라고 후회해요."

이처럼 양심의 가책 또는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부자연스러운 죽음이기 때문에 "의사조력자살도 자살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의사조력자살이 합법화되면 악용될 소지가 있다"며 "아무리 개인 선택이라도 100% 완벽한 것은 없기에, 본인이 얼마든지 말을 만들어 (위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의사조력자살의 합법화가 취약 노인계층에게 자살을 권유 혹은 조장하는 사회적 압박으로 인식될 수 있어 '현대판 고려장'으로 변질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반대 측의 논리와 맞닿아 있다.

유족도 마음이 무겁기는 마찬가지다. 신 작가는 "얼마 전 통화한 고인의 아내가 '남편이 그런 방식으로 떠나는 바람에 유족은 죄인이 된 심정으로 슬픔조차 오롯할 수 없다"고 했다고 책에 썼다. "안락사는 좋다면 본인한테만 좋은 거라는 말로 남은 사람들의 아픔과 상처를 표현했어요. 사망 사유를 밝히기도 난감하고, (의사조력자살을 금지한) 호주 현지의 현행법을 어겼으니 누구를 만나든 남편이 어떻게 죽었는지 숨기게 된다고 했죠."

또 신 작가는 비슷한 시기 고인과 똑같이 64세의 나이에 폐암으로 사망한 남편을 둔 다른 독자의 현재 삶과도 비교했다. "그분은 평안하게 남은 자로서의 삶을 잘 꾸리고 계세요. 어둠의 터널을 온전히 통과하면서 보다 편해진 마음으로 저와 식사 약속을 하실 정도로 여유를 되찾으셨죠. 배우자 상실이란 면에서는 같아도 순리에 맞는 죽음과 그렇지 않은 죽음을 경험한 두 아내의 모습이 나란히 겹칩니다. 순리에 따른 죽음의 상처가 한줄기 아픔을 남긴다면 자연을 거스르는 죽음은 유족의 가슴을 사방으로 헤집는 것 같아요."

"호스피스완화의료 확대해야... 고인의 유족에게 죄송"

신 작가는 "(찬성 측이 강조하는) 자기결정권이라고 하면 자살하는 사람도 비난할 명분이 없다. 고인도 자신의 결정이라고 했다"며 "그렇게 돌아가셨는데 왜 남인 내가 1년이 넘도록 마음이 무겁고 아플까"라고 반문했다. 그래서 "유족에게도 자연사하는 일반적 죽음과 비교할 수 없는 고통과 상처를 남긴다"고 결론 내렸다.

또 스위스에 다녀오고 글을 쓰는 도중 종교를 갖게 된 영향도 그의 생각 변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 종교계는 대부분 "생명경시 풍조가 만연할 수 있다"며 의사조력자살에 반대하고 있다.

신 작가는 의사조력자살 대신 호스피스완화의료 제도를 확대해 얼마든지 말기 환자의 고통과 두려움을 완화시킬 수 있으며, 죽음을 대하는 문화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명치료에 쏟아붓는 돈을 호스피스로 돌리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혜택 받고 개선될 거예요. 안락사를 논하기에는 시기상조예요. 그 전에 죽음 자체가 양지로 나와 일상에서 대화를 나눠야 해요. 모든 죽음은 삶을 이야기하니까요."

그는 마지막으로 "A씨의 의사조력자살을 지켜본 자신이 정작 이 제도를 반대하게 돼 고인과 유족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가 고인의 죽음을 좋지 않게 얘기하니까 그분의 영혼이 있다면 마음이 아플 거예요. 책 판매 수익금의 일정 부분을 호스피스 활성화에 쓸 생각이에요. 그래야만 그분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되니까요."

박민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