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저항선 150엔도 뚫었다"...엔화 가치 거품 경제 수준으로 '뚝'

입력
2022.10.20 18:10
엔·달러 환율 150엔 넘어서며 32년 만에 최저
일본은행, '통화 완화' 정책에 엔저 현상 지속
정부 시장 개입 전망...긴축 없으면 효과 없을 듯

엔·달러 환율이 심리적 저항선인 150엔도 넘어섰다. 1990년 8월 이후 32년 만에 엔화 가치가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유례없는 '엔저(엔화 가치 하락)' 현상에 일본의 올해 상반기 무역 적자는 반기 기준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일본은행 채권 매수 후 달러당 150엔 돌파

20일 오후 도쿄 외환시장에선 엔·달러 환율이 당국의 개입을 우려해 '심리적 저항선'으로 불리던 150엔을 넘어섰다. 지난 9월 1일 달러당 140엔대를 넘어선 뒤, 약 50일 만에 환율이 추가로 10엔이나 오른 것(엔화 가치 하락)이다. 엔·달러 환율이 150엔을 넘어선 것은 '거품 경제 붕괴'로 일본 경제 체력이 극도로 허약했던 1990년 8월 이후 한 번도 없었다.

이날 환율이 150엔을 넘어선 것 역시, 일본은행의 '완화적 통화정책 유지' 시그널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당초 시장에서는 일본 정부의 시장 개입 가능성 때문에 '눈치 보기' 장세가 이어졌다. 하지만 일본은행이 이날 오전 채권금리 상승을 막기 위해 대규모 채권 매입을 하는 '공개 시장 조작'에 나서자 엔·달러 환율이 급등했다.

스즈키 슌이치 재무장관은 이날 오후 "투기에 의한 과도하고 급격한 변화는 용인할 수 없고, 그러한 움직임이 있을 때는 단호한 대응을 취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며 "앞으로도 긴장감을 갖고 동향을 제대로 보겠다"고 말했다.

엔·달러 환율이 150엔 선을 찍은 만큼 일본 정부가 엔화를 대거 매입하는 시장 개입에 조만간 나설 것이란 관측이 높다. 그러나 금리 인상 등 일본은행이 통화 정책 기조를 긴축으로 바꾸지 않는 한, 엔화 약세 현상은 막지 못할 것이란 분석이 많다. 지난달 22일 환율이 145엔을 돌파했을 때 일본 정부가 개입에 나섰지만, 그 효과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당장 미국중앙은행인 연준은 다음 달 1, 2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이상 올리며 일본과의 금리 차이를 더 벌릴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행이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국제 외환 시장에서 '엔화 매도, 달러 매수' 현상은 더 굳어질 수밖에 없다.

상반기 무역적자도 사상 최대... 고유가에 엔저 겹쳐

연초 110엔대였던 엔화 가치가 1년도 안 돼 40엔 가까이 급락하면서 일본의 상반기 무역적자도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재무성이 20일 발표한 2022년도 상반기(올해 4∼9월) 무역수지는 11조75억 엔(약 105조4,900억 원) 적자로 집계됐다. 이는 비교 가능한 통계가 있는 1979년 이후 반기 기준으로 역대 최대 적자폭이다.

일본은 원유와 원자재를 많이 수입하는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가격이 급등하면서 수입액 자체가 늘었다. 여기에 엔저 현상까지 겹치면서 일본이 실제 부담해야 하는 수입 가격은 더 부풀려졌다. 이 기간 원유 수입단가는 전년 동기 대비 91.8%나 폭등했다. 상반기 수출액은 49조5,762억 엔으로 전년 동기보다 19.6% 증가했지만, 수입액 증가액을 따라잡지 못했다. 이 기간 일본 수입액은 60조5,837억 엔으로 전년 대비 44.5% 증가했다.

무역적자 폭이 커지면서 일각에선 일본이 올해 42년 만에 처음으로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30년 연속 대외순자산 1위 국가인 일본은 무역수지가 적자를 기록하더라도 해외 자산에서 거둬들이는 수익이 워낙 많아 경상수지는 흑자를 기록해 왔다. 그러나 올해는 무역적자 규모가 너무 커서 이를 상쇄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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