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열 살이었던 김성한(64)씨는 서울아동보호소에서 친형과 함께 생활하다 영문도 모른 채 ‘선감학원’으로 끌려갔다. 그곳은 지옥이었다. 10년 넘게 구타와 가혹행위는 일상이었고, 한 번은 가을 추수가 끝난 뒤 이삭을 주워 먹다 몽둥이세례를 받기도 했다. 그는 50년이 지난 지금도 자신을 때린 교사 이름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김씨는 “배고픔과 서러움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2기 진실ㆍ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20일 1940년대부터 40여 년간 부랑아 단속 등을 명목으로 아동을 강제 수용한 선감학원 사건을 ‘중대한 아동인권 침해’로 규정했다. 1982년 시설은 폐쇄됐지만, 40년 만에 국가 차원의 첫 진실규명이 이뤄진 것이다.
정근식 진실화해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선감학원 사건은 경찰 등 공권력이 불특정 아동을 법적 근거와 절차 없이 강제로 가둬 강제노동, 가혹행위, 성폭력, 생명권의 침해, 실종, 교육 기회 박탈 등을 자행한 중대한 인권침해”라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김영배 선감학원피해자대책협의회 회장 등 167명을 피해자로 인정했다.
선감학원은 1942년 일제강점기 시절 태평양전쟁에 필요한 인력 양성을 위해 경기 안산시 선감도에 설립됐다. 광복 후엔 정부가 ‘부랑아 수용보호’를 앞세워 1982년까지 운영했다. 끌려온 아동만 4,689명, 이 중 약 70%가 주거지가 일정한 이들이었다. 기록되지 않은 아동을 포함하면 수용 인원은 5,000명을 웃돌 것으로 추산된다. 이재승 진실화해위 상임위원은 “개인 사설 기관이었던 부산 형제복지원과 달리 선감학원은 국가가 조직적으로 운영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 사망자 수도 당초 집계된 24명보다 5명 많은 29명으로 드러났다. 선감학원에서 숨진 아동들의 유해를 찾기 위한 시굴에서도 5개 봉분 모두에서 16∼28세로 추정되는 치아 68개와 단추 등이 발견됐다. 암매장지 주변엔 봉분이 150기나 더 있어 진실화해위는 추가 발굴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아울러 진실화해위는 선감학원 운영 주체인 경기도에 책임이 있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경기도가 1957년 선감학원의 설치 및 보호수용 근거가 되는 조례를 제정했고, 아동시설을 섬이라는 단절된 곳에 둬 수용자들의 정신적ㆍ신체적 피해와 사망 사고 등을 방치했다는 것이다. 기자회견에 직접 참석한 김동연 경기지사는 “국가폭력으로 큰 고통을 겪은 생존 피해자와 유가족께 깊은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남은 과제는 생존 피해자들에게 합당한 보상을 하는 것이다. 올해 2명이 숨졌는데, 한 명은 극단적 선택을 할 정도로 피해자들은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김영배 회장은 “행정은 느린 반면 피해자들의 늙는 속도는 빠르다”며 조속한 지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경기도는 △피해자 생활안정금 지원 △트라우마ㆍ의료서비스 지원 △추모 및 기념사업 추진 등을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