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시점에서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ASEAN)이 지난해 이뤄낸 5대 합의보다 미얀마 위기를 완화시킬 수 있는 더 나은 계획은 없다. 이 방법이 전부다.” (포우 소시락 캄보디아 평화협력연구소장)
“우리는 터널의 끝에서 어떤 빛도 볼 수 없다. 1년 넘도록 진전을 이루지 못한 5대 합의를 포기하든 대폭 바꾸든 다시 논의해야 한다.” (리나 알렉산드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국제전략연구소(CSIS) 수석연구원)
18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동아시아·아세안연합경제연구센터(ERIA) 에디터 원탁회의'. 아세안의 군부가 삼킨 미얀마 문제의 대응안을 두고 두 전문가는 각각 유화책과 강경책을 제시했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 발발 2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엇갈리는 아세안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해 2월 미얀마 군부 쿠데타 이후 아세안 국가들은 발 빠르게 대응했다. 같은 해 4월에는 특별 정상회의를 열고 미얀마 유혈 사태 해결을 위해 △즉각 폭력 중단 △건설적 대화 △아세안 의장과 사무총장이 특사로서 대화 중재 △인도적 지원 제공 △특사와 대표단의 미얀마 방문·모든 당사자와의 면담 보장 등 5가지 내용을 채택했다.
그로부터 1년 6개월이 지난 현재 합의 이행은커녕 미얀마 군정의 잔혹한 탄압은 멈추지 않았다. 이 때문에 18일 회의에 참가한 전문가들은 합의를 무시하는 군부의 ‘마이웨이’를 규탄하며 비판을 쏟아냈다.
다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의견은 나라마다 엇갈린다. 올해 아세안 순회 의장국인 캄보디아는 ‘대화’에 방점을 두고 있다. 캄보디아 산업부 장관과 주일본 대사를 지낸 소시락 소장은 군부의 합의 이행을 이끌어내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시락 소장은 훈센 캄보디아 총리(1월)와 아세안의 미얀마 특사 쁘락 소콘 외교장관(3·6월)의 미얀마행을 두고 “군부에 5대 합의 이행을 압박하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군부와 아세안 국가가 화해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는 움직임이라고도 평가했다.
“미얀마가 끝내 5대 합의를 거부한다면 아세안 회원국 자격 정지까지 고려해야 한다”면서도, 당장은 어떻게든 대화 테이블에 앉히고 협상을 이어가는 ‘정치적 해결’을 우선 순위에 올린 것이다.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은 보다 강경하다. 알렉산드라 수석연구원은 군부가 올해 7월 민주화 운동가의 사형을 집행한 사실을 거론하며 “5대 합의 중 첫 번째 사안, 즉 무장 단체와 민간에 대한 폭력이 멈추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미얀마 사태로 아세안 지역 신뢰와 통합이 흔들리고 있다며 “아세안이 미얀마 위기에 인질로 잡혀선 안 된다”고 꼬집기도 했다.
화상으로 참가한 싱가포르 싱크탱크 ISEAS-유소프 이삭 연구소 모에 투자르 연구원 역시 “아세안이 (5대 합의 외) 다루지 않은 더 많은 방식으로 싸움을 강화하는 등 효과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간의 ‘외교적 해법’으로는 문제 해결이 난망한 만큼, 5대 합의 재검토와 국제사회의 압박ㆍ제재 등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로 풀이된다.
미얀마 군부와 캄보디아 정부의 과한 밀착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내년 미얀마 총선을 앞두고 군정의 정당성을 쌓는 데 악용될 수 있는 탓이다.
다음 달 10~13일 프놈펜에서 열리는 아세안 정상회의에서도 적지 않은 의견 충돌이 예상된다. 미얀마 쿠데타 발생 초기부터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은 우려를 표명하고 아세안 차원의 적극적 해결을 촉구한 반면, 캄보디아와 태국 등은 상대적으로 미온적 반응을 보여왔다. 18일 전문가 회의는 개인적 의견인 동시에 각국 이해관계가 반영된 사실상의 ‘정상회의 장외 예고편’인 셈이다.
아세안 국가들이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면서 미얀마의 암운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군부 탄압을 피해 태국에서 활동 중인 미얀마 독립언론 미찌마 소속 킨 마웅 윈 기자는 18일 회의가 끝난 뒤 이렇게 외쳤다. “(시민들과 군부의) 화해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아세안은 물론 한국, 일본, 인도까지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주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