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관광 어때요… 울산 바위섬 ‘소리 9경’ 하러 오이소

입력
2022.11.04 04:00
16면
그 섬에 가다 <11> 울산 슬도
울산고속터미널에서 자동차로 30분
벌집처럼 뚫린 구멍에서 거문고 소리
파도소리부터 종·바람·엔진·뱃고동까지
일몰 사진 명소로… 한 해 20만 명 방문

편집자주

3,348개의 섬을 가진 세계 4위 도서국가 한국. 그러나 대부분 섬은 인구 감소 때문에 지역사회 소멸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생존의 기로에서 변모해 가는 우리의 섬과 그 섬 사람들의 이야기를 격주로 소개합니다.


소리에는 특별한 힘이 있다. 진공청소기 또는 헤어드라이기의 백색 소음을 들으며 수면을 청하거나 빗소리와 같은 다양한 ASMR(자율감각쾌락반응)를 통해 심리적 안정을 취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도 소리가 주는 치유의 힘 때문이다.

소리가 주는 매력을 일찌감치 지역 관광에 활용한 지방자치단체가 울산 동구다. 2012년 전국 최초로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특징적 소리 9가지를 선정해 '보는' 관광에서 '듣는' 관광으로의 전환을 시도했다. △슬도의 파도소리를 비롯해 △신라시대 고찰인 동축사의 새벽 종소리 △옥류천의 계곡 물소리 △마골산 숲 사이로 부는 바람소리 △현대중공업 엔진 소리 △새 배의 출항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 △울기등대의 무산(등대 경적) 소리 △대왕암공원 몽돌이 구르는 소리 △주전해변의 파도소리가 동구가 선정한 소리 9경이다. 소리 9경 중에서도 가장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슬도를 지난달 13일 찾았다.

슬도는 울산시 동구 방어진항으로 들어오는 파도를 막아주는 작은 바위섬이다. 해발 7m에 면적 3,083㎡로 축구장 크기 절반에 불과하다. 원래 무인도였으나 1987년 다리가 놓이면서 뭍이 됐다. 섬을 이루는 바위는 모두 벌집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석공조개 일종인 돌맛조개가 수백만 년에 걸쳐 만들어낸 흔적이다. 슬도(瑟島)라는 지명은 이 구멍 사이로 바닷물이 드나들 때 거문고 타는 소리가 난다고 해서 붙여졌다. 구멍 난 돌의 모양을 빗대 ‘곰보섬’, 또는 바다에서 보면 지형이 시루를 엎어 놓은 것 같다고 해서 ‘시루섬’으로도 불린다.


'보는' 바다에서 '들리는' 바다로

슬도까지 가는 방법은 간단하다. 울산고속버스터미널에서 15km, 자동차로 30분가량 이동하면 방어진항에 도착한다. 이 방어진항 동쪽 끝자락에서 거문고 모양의 교량(슬도교)만 건너면 슬도다. 교량은 방파제를 합쳐도 100m 남짓 짧은 거리지만, 구경하는 재미는 제법 쏠쏠하다.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건 슬도교 중간에 있는 11m 높이의 어미고래 조형물이다. 국보인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서 영감을 얻어, 새끼고래를 업은 어미 고래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방문객들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는 의미로 2011년 세워졌다. 바닷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회색 테트라포트(중심에서 사방으로 발이 나와 있는 콘크리트 블록)는 알록달록한 조개와 불가사리, 게 등 다양한 모양을 입체 부조타일로 장식해 밋밋함을 느낄 수 없다.

슬도를 바라보고 교량 왼쪽은 대왕암이, 오른쪽은 조선소 대형 크레인이 우뚝 솟아 있다. 첫눈에 보면 어색한 조합이지만 잠시 눈길을 멈추고 지켜보면 색다른 느낌을 준다. 다랑논처럼 층층이 밀려든 파도는 바위와 만나 저마다 다른 소리를 내며 하얗게 부서진다.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귀로 들리는 듯하다. 울산 동구의 소리 9경 중 슬도명파(瑟島鳴波)를 최고로 꼽는 이유가 귀로 와 닿는다.

울산 동구는 지난 9월부터 슬도 투어 프로그램 ‘슬도 미스터리 사운드’도 운영 중이다. 마을에서 들리는 수상한 소리의 정체를 쫓는 미스터리 형식 게임으로 13가지 미션을 완료하면 인증서를 준다. 김명지 울산 동구 홍보계 주무관은 “100여 년 전 문헌을 보면 단양팔경처럼 동면8경 또는 방어진12경이 있다”며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동구 소리 9경을 만들고 관광 상품화한 이후 연간 20만 명이 슬도를 다녀간다”고 귀띔했다.

어디서 찍어도 작품… '동굴샷'의 비밀

슬도의 매력은 물론 청각뿐 아니라 시각으로도 느낄 수 있다. 영문 ‘SEULDO’ 구조물을 비롯해 하얀 슬도등대, 이맘때 피는 보랏빛 해국, 동해에선 보기 드문 일몰까지 섬 곳곳이 사진 촬영 명소로 꼽힌다. 그중에서도 요즘 슬도 방문객 사이에서 화제는 단연 ‘동굴샷’이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봐도 동굴은 없다. 바위에 손바닥만 한 바위 구멍이 있을 뿐이다.

착시효과. 사진의 비밀이 풀리는 순간 관광객들은 한바탕 웃음을 터트린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동굴샷’을 보고 왔다는 김미진(23)씨는 “구멍을 보고 ‘애걔’ 했다가 사진을 찍고 ‘우와’ 했다”면서 “슬도를 두고 왜 작지만 큰 섬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된다”고 추켜세웠다. 제주도에서 온 강경완(63)씨는 “요즘 사람들은 여행을 가서 사진을 찍는 게 아니라, 사진을 찍으러 여행을 간다”며 “해파랑길을 걷는 중에 슬도가 예쁘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부러 들렀다”고 말했다.

슬도 유명세에 ‘성장통’ 겪는 성끝

슬도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장소가 성끝마을이다. 슬도와 다리로 이어진 성끝마을은 조선시대 석성을 쌓아 말을 붙잡아 두거나 말몰이를 했던 목장이 있던 장소다. 석성 끝부분이라 해서 ‘성끝’으로 불리게 됐다. 일제강점기부터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해 지금도 1960~1970년대 어촌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골목 폭은 어른이 양팔을 벌리면 손끝이 닿을 만큼 좁고, 지붕은 하나같이 낮고 낡았다. 대문도 없다. 성끝마을에서 나고 자란 김부근(59)씨는 “성끝마을 주민들에게 슬도는 어릴 적 놀이터였다”며 “슬도까지 헤엄을 치거나 인근에서 낙지, 문어, 조개 등을 잡으며 놀곤 했다”고 회상했다.

슬도의 인기에 힘입어 성끝마을에도 최근 옛집에 세련된 감성을 더한 가게들이 속속 들어서는 등 변화가 일고 있다. 지난해 어머니가 쓰던 낡은 바느질 공방을 개조해 카페를 연 정효진(29)씨는 “작은 섬마을 분위기를 그대로 살리는 데 중점을 뒀다”며 “입소문을 타면서 지금은 핫플레이스가 됐다”고 말했다.


쇠락한 동네에 스며든 활기가 반가울 법도 하지만, 주민들에게는 근심도 있다. 성끝마을 주택 대부분이 국유지에 세워진 무허가 건축물이라, 각종 개발이 진행되더라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기 어려운 탓이다. 울산시 관계자는 “통영 동피랑 같은 향토 어촌마을로 보존하는 방안을 포함해 여러 가지 대안을 검토 중”이라며 “주민들의 재산권을 보호하면서도 국유지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을 찾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울산= 박은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