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사태의 직접 원인이 데이터센터(IDC) 화재로 밝혀지면서 미래 먹거리로 각광 받던 IDC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IDC는 최근 급성장한 데이터 산업 전산 처리의 핵심 시설이다. 구글·애플·아마존 등 글로벌 빅테크는 세계 곳곳에 자체 데이터센터를 두고 있고, 국내 통신사와 건설사도 IDC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하지만 이번 카카오 사태를 계기로 IDC 관리·감독에 허점이 드러나면서 "이대로는 국내 IDC 산업 전체가 수렁에 빠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8일 한국데이터센터연합회에 따르면, 2000년 53개였던 전국 IDC는 2020년 156개로 증가했다. 2025년에는 188개까지 늘고, 시장 규모도 1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IDC는 국민 생활은 물론 국가 안보와도 직결된 많은 양의 데이터를 처리하는 만큼 서버 현황이나 고객사 등 구체적 정보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이처럼 국내 IDC 산업의 몸집은 빠르게 커지고 있지만, 관리·감독 시스템은 대체로 한참 뒤처졌다. 주무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사전 관리 권한이 없고, 소방도 IDC 화재 대응 매뉴얼을 갖추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까지 국내 IDC는 개별 기업이 자체적으로 마련한 매뉴얼에 따라 안전 관리와 기능 개선이 이뤄졌다"면서 "정부나 산업계 차원의 공통된 관리 체계는 없다"고 설명했다. 결국 개별 기업이 어떻게 하느냐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고, 기업이 신경 쓰지 않으면 갖가지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국내 1등 통신사를 보유한 SK그룹이 운영하는 데이터센터조차 화재에 대비한 전력 이원화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화재가 발생한 건물은 지하에는 전기실을 두고 있고, 지상 2~6층을 IDC로 쓰는데, 다른 곳들도 이와 유사한 구조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16일 화재 현장을 점검한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SK C&C 데이터센터 지하 3층 배터리에서 시작된 화재가 메인 케이블을 손상시켰다"면서 "데이터센터 구조 설계부터 (문제가 있어) 배터리와 메인 케이블의 물리적 분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의 IDC 안전관리 행태를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최근 많은 IDC가 자신들의 안정성을 내세우기 위해 '그린 IDC'나 'ISO' 같은 인증 등을 따지만, 일부 IDC는 실제 안전 관리가 허술하다는 것. 민주노총 산하 IT 노조 김환민 부위원장은 "SK C&C도 안전 관련 인증들을 획득했지만 인화 물질인 배터리를 전기 배선이 가득한 지하 전기실에 쌓아 놓는 등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보였다"면서 "IDC가 이런 식으로 관리되면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IDC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과 산업 전반의 실태 점검을 요구하고 있다. IDC 산업 자체의 성장성은 큰 만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기본 토대를 다시 한번 확실히 다지자는 뜻이다.
권헌영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정부나 관련 기관이 IDC를 대상으로 한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면서도 "다만 IDC 규제 강화가 진입 장벽으로 작용해 글로벌 빅테크끼리만 살아남는 시장으로 바뀌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카카오, 네이버같이 국민 생활에 밀접한 데이터를 관리하는 IDC는 기준을 꼼꼼하게 만들어 철저하게 살펴볼 수 있게 해야 한다"며 "대신 그렇지 않은 IDC는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주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카카오 사태를 기점으로 IDC 운영 방식에 대한 전반적 점검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국내 IDC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재난 상황에서 소비자 피해를 줄이려면 체계화된 운영 시스템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같은 대학 김승주 교수는 "SK C&C가 IDC 전원을 내릴 때 카카오와 네이버 동의를 얻었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며 "이번 사태를 단순히 카카오만의 문제로 보지 말고 IDC와 데이터 산업 전반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