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만의 대규모 감세를 추진했던 영국이 결국 '유턴'했다. 제러미 헌트 영국 신임 재무부 장관은 취임 사흘 만인 17일(현지시간) "리즈 트러스 총리의 감세안을 거의 대부분 되돌릴 것"이라고 전격 발표했다.
헌트 장관은 이날 영상으로 발표한 성명에서 "소득세율 인하를 취소하고, 에너지 요금 지원을 축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소득세 기본세율을 20%에서 19%로 내리기로 한 당초 계획을 철회한 것이다. 경제 여건이 될 때까지 소득세 기본세율은 무기한 동결하기로 했다. 또 보편적 에너지 요금 지원은 2년에서 6개월로 단축, 내년 4월부터 취약계층 위주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정부는 경제안정 책임이 있으며 공공 재정 지속가능성에 관해 확신을 줘야 한다"며 "감세를 위해서 나라 빚을 지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앞으로 세금 인하가 아닌 인상에 나서고, 정부 지출을 삭감하는 긴축 기조로 방향을 틀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이날까지 철회된 감세 계획은 연 450억파운드(약 73조 원) 규모 감세안 중 320억파운드(32조 원)에 해당한다.
헌트 장관은 예산안 일부를 예정보다 2주 앞당겨 이날 발표했다. 금융 시장 안정을 위한 조치다. 전체 예산안과 독립기구인 예산책임처(OBR)의 중기 재정 계획은 예정대로 오는 31일 발표된다.
앞서 트러스 총리는 '고소득자 소득세 인하'를 철회한 데 이어 '법인세 인상'에 나서면서 두 차례나 감세안을 대대적으로 수정한 바 있다. 먼저 지난 3일 감세 계획 중 최고세율을 45%에서 40%로 낮추기로 했던 방안을 없던 일로 했다. 영국발 금융위기 우려가 커지고 정권 위기로까지 번지자 감세안 발표 열흘 만에 한 발 물러선 것이다.
그런데도 금융 시장 혼란이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자 지난 14일 두 번째 백기를 들었다. 2023년부터 법인세율을 19%에서 25%로 올리기로 한 전임 보리스 존슨 총리의 계획을 폐지하기로 했던 계획을 백지화한 것이다. 쿼지 콰텡 재무장관을 경질하는 정치적 결단도 함께 내렸다.
이날 발표로 '감세를 통한 경제성장'을 내걸었던 트러스 총리는 바람 앞의 등불 처지가 됐다. 미국 CNN방송은 "이 같은 조처는 트러스 총리가 3주 전에 발표한 감세안을 완전히 뒤집은 것으로, 트러스 총리는 위험한 정치적 입지에 놓이게 됐다"고 전했다. 보수당 의원 4명이 공개적으로 트러스 총리의 사임을 요구하고 나섰다. 보수당 의원 100명 이상은 이미 트러스 총리에 대한 불신임 서한을 보낼 준비를 마쳤다고 영국 데일리메일은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