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10월 24일 목요일 미국 주식시장이 당시 기준 역대 최악의 하락률로 장을 마쳤다. 305.85로 출발한 다우지수가 11% 폭락했고, 거래량도 평소의 3배에 달했다. 다음 날 월가 은행들의 집중적인 매수로 다우지수는 0.6% 상승했지만, 월요일(28일) 13.47%, 화요일 11.7% 낙폭으로 주식시장이 초토화됐다. 대형 투자 손실을 입은 은행들은 빚을 내 주식을 산 개인 파산까지 겹친 데다 저축 인출사태(bank run)마저 이어져 잇따라 도산했고, 1920년대 호황기에 대규모 투자를 감행했던 기업들 역시 쌓인 재고와 냉각된 수요심리로 덩달아 파산했다. 1933년까지 4년 사이 미국 은행 거의 절반이 문을 닫았고, 노동력의 30%에 달하는 1,500만 명이 직장을 잃었다. 1929년 세계대공황이 그렇게 시작됐다.
제1차 세계대전 전후 1920년대를 미국 역사는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라고 부른다. 경제는 급성장했고, 실업률도 안정적이었다. 주식시장은 1921~1929년 한 해 평균 20%씩 상승했고, 시장 규모도 8년 사이 약 6배나 커졌다. 너나없이 주식 투자에 몰렸고, 두려움 없이 은행 대출을 받았다. 물론 당시에도 일부 투자전문가와 경제학자들은 자산 거품과 고평가된 주가에 대한 경고 사인을 보냈다. 하지만 투자자의 비이성적 탐욕은, 8월 연방준비제도이사회(현 연방준비은행)의 뒤늦은 금리 인상(4%→5%)에도 불구하고, 거침없이 치솟아온 주가 그래프의 관성을 더 신뢰했다.
고용시장의 약자들, 특히 흑인들이 실업자 대열의 선두에 서야 했고, 가뭄까지 겹쳐 ‘먼지 그릇(Dust Bowl)’이라 불리던 남부는 '오키(Okie)’ 즉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를 떠도는 수많은 생계 난민을 양산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은 당연히 공황 구제에 큰 도움이 됐지만, 미국 경제가 회복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을 맞이한 뒤부터였다. 다우지수는 25년 뒤인 1954년 11월에야 1929년 이전의 고점을 회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