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첫선을 보인 이후 줄곧 국내 숙취해소제 시장에서 1위를 지켜 온 컨디션의 숙제는 바로 이 꼬리표를 떼는 것.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회식이 줄면서 젊은 층의 음주문화는 달라졌고, 술을 '가볍게 즐기는'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반생)를 공략하기 위해선 이미지도 확 젊어져야만 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컨디션의 상품 개발과 기획을 맡고 있는 HK이노엔의 음료마케팅팀은 젊은 세대가 중심이다. 회사가 좀 더 젊고 밝은 이미지의 컨디션을 만들기 위해 변신에 상당히 공을 들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24일 서울시 중구 을지로 HK이노엔 본사에서 만난 음료마케팅팀 박지혜 팀장과 이현기 대리는 "컨디션은 회식 때 직장인들이 많이 마시는데 회식이 사라진 코로나19 시기에 암흑기였다"며 코로나19 이후 제형부터 마케팅 전략까지 대변신을 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들려줬다.
컨디션은 출시 후 오랜 기간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2019년 기준 숙취해소 '음료' 시장에서 컨디션의 점유율은 47.5%에 달한다. 박 팀장은 "(숙취해소제 시장은) 첫 출시 직후처럼 폭발적이지는 않지만 코로나19 이전보다 조금 더 성장했다"며 "술을 마실 수 있는 '성년 인구'는 해마다 생기고 그만큼 신규 고객도 늘어서"라고 말했다.
컨디션은 코로나19 암흑기 동안 시제품을 열 차례 만들면서 탈바꿈을 위해 안간힘을 썼다. 술 마시는 문화가 눈에 띄게 달라졌고 이를 반영해 기능과 타깃을 재조정하려는 것. 박 팀장은 "해마다 12월은 월평균 매출이 130% 이상 오르던 초성수기였다"며 "하지만 코로나19로 송년회나 회식 때 한꺼번에 많은 양의 술을 먹기보다 평소에 조금씩 술을 즐기는 인구가 늘면서 월별 매출 편차도 줄었다"고 말했다. 이는 가벼운 술자리 때도 챙길 만한 숙취해소제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숙취해소제를 찾는 이유도 달라졌다. 이 대리는 "죽지 않기 위해 마시던 숙취해소제의 성격이 술자리를 즐기기 위해 컨디션을 관리하는 음료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바로 '영양제'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면역을 높이는 건강식품 수요가 폭발하자, 간 건강에 도움 되고 항산화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밀크시슬'을 숙취해소제에 넣은 것이다. 밀크시슬 고유의 비린 맛이 강해, 다른 성분들과 어우러지게 하기 위해 열 번이나 다시 만들어야 했다. 박 팀장은 "밀크시슬의 존재감이 이렇게나 강력한지 몰랐다"며 "본제품 출시와 비슷한 수준으로 수백㎏에 달하는 시험 생산을 되풀이했고 시제품 테스트만 여러 차례 했다"고 설명했다.
고객의 수요를 파악하기 위해 이곳저곳 술자리를 찾아다니며 달라진 음주문화를 파악한 건 기본이다. 상품개발자라는 '신분'을 숨기고 시제품을 권해보기도 했다. 박 팀장은 "제품 개발하는 사람들의 몸에 밴 습성이자 직업병"이라며 "개발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좋은 얘기만 해주려 하기 때문에 '새로 나온 거랍니다' 하고 열심히 들이민다"고 설명했다.
HK이노엔은 올해 위드코로나로 들어서면 숙취해소제 시장 양상이 또 한번 바뀔 것으로 내다보고, 밀크시슬이 들어간 스틱 제품을 다섯 달 만에 만들어 냈다. 마케팅팀과 연구원들뿐 아니라 영업부서까지 모두 뛰어든 결과다. 이 대리는 "헛개와 밀크시슬을 섞은 맛이 좋지 않아 나중에는 젤리만 봐도 헛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고 떠올렸다.
서른 살 된 컨디션의 새로운 고민은 '마시는' 숙취해소제 시장뿐 아니라 알약 모양 환이나 스틱 형태의 젤리 부분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 연령별로 좋아하는 숙취해소제 스타일은 뚜렷하게 나뉜다. 이 대리는 "환과 스틱은 20대와 30대 초중반 세대가 가장 많이 찾는다"며 "맛과 가성비를 중시하는 젊은 세대는 마시는 음료 스타일은 상대적으로 덜 찾는다"고 설명했다. 박 팀장은 "(이를 위해) 장수 브랜드 이미지 대신 젊은이도 즐길 수 있는 숙취해소제로 탈바꿈하는 게 과제"라며 "같이 술 한잔하고 싶은 연예인에 뽑힌 전소미를 광고 모델로 쓰고 20대의 브랜드가 되기 위해 공들이는 이유도 산뜻한 이미지로 변신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광고도 환과 스틱에 초점을 맞췄다. '마시는' 숙취해소제 시장에선 선두를 유지하고 있지만, 환이나 젤리 쪽에선 경쟁사에 1위를 내주고 있어서다. 업계에 따르면, 환 시장에선 '상쾌환'이 선두고, 상쾌환과 '간만세' 등이 스틱 제품도 갖고 있다.
끝없이 변신하는 노력에 시장 반응도 긍정적이다. HK이노엔의 올 3분기 연결기준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1% 늘어난 1,982억 원, 영업이익은 30.4% 증가한 223억 원을 기록했다. 수액제 등 전문의약품과 신약 '케이캡'의 마일스톤(단계별 기술료) 덕도 있지만, 회사 측은 컨디션 스틱 등 마진율 높은 컨디션 판매가 증가한 점이 영업이익 개선에도 도움이 됐다고 분석했다.
변신을 꾀하는 건 비단 컨디션만이 아니다. 업계는 3년 뒤 불어닥칠 시험을 앞두고 분주한 모습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2024년까지 숙취 해소의 과학적 근거를 내지 못할 경우 '숙취해소' 표현을 쓰지 못하도록 규제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이는 '마법의 약'의 태생적 한계 때문이다. 애초에 임상시험으로 효과를 확인하는 '의약품'으로 출시된 것이 아닌 '일반식품'으로 분류돼서다. 이에 식약처는 숙취해소제가 소비자들에게 건강기능식품이나 의약품으로 잘못 알려질 소지가 있다고 보고 '인체적용 시험'을 통해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도록 했다.
제약업체와 식품사들은 저마다 돌파구 마련에 분주하다. HK이노엔(컨디션)과 동국제약(아니벌써)은 자체 보유한 특허증과 근거 자료를 바탕으로 인체적용 시험에 대비하고 있다. 다른 대다수 중견 회사들도 내년 3월 식약처의 세부 가이드라인에 맞춰 동아제약(모닝케어)과 롯데칠성음료(깨수깡), 한독(레디큐), 영한네이처(술깸)는 시험을 실시할 계획이다.
▶숙취해소제 30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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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해장은 북엇국'서 '컨디션'으로…숙취해소제 30년史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03014160000153
②숙취해소제는 정말 술 깨는 효과 있을까? 3년 뒤 수수께끼 풀린다는데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12412520001036
③"살기 위해 마신다→ 즐기려고 마신다" 1등 컨디션의 이유 있는 변신[인터뷰]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01614570005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