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발표된 부활의 '사랑할수록'(김태원 작사 작곡, 보컬 김재기)을 듣고 어떤 이가 이렇게 말했다. "누구든 불러보지만 누구도 부를 수 없는 노래."
어찌 이 말에 동의하지 않겠는가. 한국에 이런 수준의 명곡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다. 작고하신 김재기 님을 추억하며 부활의 건승을 빈다. 시월의 시린 날에 '사랑할수록'을 틀어놓고 책을 펼치면 이런 호사가 없을 것이다.
본론으로 들어가 책 읽기를 말해보자. 역시 가을에는 역사책이 적당하다. 옛날 사람들은 더울 때는 정서를 함양하는 시문을 읽고, 날이 차가워지기 시작하면 경전이나 역사서를 읽었다고 한다. 한국사를 재미있게 접하고 싶다면, '삼국사기(일명 삼국사)'와 '삼국유사'를 나란히 놓고 교차해서 읽는 것을 추천해 본다.
김부식이 고려 황제 인종(仁宗)에게 '삼국사기'를 바치며 쓴 글, '진삼국사기표(進三國史記表)'에 이런 대목이 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성상 폐하께서는 요임금 같은 슬기와 우임금 같은 부지런함을 겸비하시고 하루 중에 틈만 생기면 옛 사적을 널리 읽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의 학자와 관리를 보면 오경(五經)과 제자서(諸子書), 그리고 진(秦)나라와 한(漢)나라의 역사에 대하여 더러는 정통하여, 이를 상세하게 설명하는 사람이 있지만, 정작 우리나라의 사적에 대해서는 조금도 그 시말을 알지 못하니 심히 개탄할 일이다. 신라·고구려·백제는 개국 때부터 삼국으로 우뚝 솟았고, 중국과는 문화로 소통하였다… 마땅히 재능과 학문과 견식을 겸비한 인재를 찾아 권위 있는 역사서를 완성하여 자손만대에 전함으로써 우리의 역사를 해와 별같이 빛나게 해야 할 것이다.(貽之萬世, 炳若日星)"
아! 참으로 남의 얘기가 아니었다. 유학 시절 '춘추좌전'과 '사기'에 몰두하던 필자에게, 갑자기 지도교수께서 '삼국사기(원문)'를 읽어 봤냐고 물으셨다.
그런데 그만 지금 돌이켜보면 황당한 대답을 하고 말았다. 중국을 전공으로 연구하기 때문에 읽지 않았다고 한 것이다. 교수님 표정이 조금 변하시더니 말씀하시길, 근자에 우연히 '삼국사기'를 읽었는데 문장이며 체제가 너무 완벽해서 감탄했다고 하시며 정말 고려사람이 쓴 건지 알고 싶다. 혹시 고려에 귀화한 중국인이 써 준 것이 아니냐고 하신다. 필자가 절대 중국인이 쓴 것이 아니고 고려 조정의 일류 학자들이 쓴 책이라고 말씀드리자, 불똥이 엉뚱한 데로 튀었다. 갑자기 역정을 내시며, 그 좋은 제 나라의 역사책을 읽지도 않고 '좌전'과 '사기'를 보겠다는 것은 온당치 않다. 지금부터 '삼국사기'를 정독하고, 일 년 안에 관련 보고서 한 편을 써오라는 말씀이셨다. 날벼락을 맞은 셈이었다. 그렇게 얼떨결에 '삼국사기'를 접하게 되었다. 보고서는 기한을 넘겨서야 겨우 제출했다.
언제부턴가 학계 일각에 '삼국사기'를 폄훼하는 말이 도는데, 정도가 과하다고 느껴진다. 사관(史觀)이나 사론(史論)에 이견이 있다고, 원전의 신뢰성과 진실성까지 부정하는 것은 선현들의 엄정한 학문 태도와 한국 지성사에 대한 모욕이다.
한편, '삼국유사'가 없다면 우리는 조상의 체취를 맡지 못한다. '삼국사기' 필진이 놓친 부분을 보완하는 사료의 가치도 훌륭하다. 두 권을 같이 놓고 읽으면 눈앞에 그 시대가 홀연히 재현하는 느낌이다.
원래 역사책은 당대 일류 학자만 쓸 수 있었다. 따라서 그 문장은 각국의 문화 수준을 가늠하고 비교해 볼 수 있는 척도였다. 비슷한 시기를 다룬 중·일의 역사책을 펼쳐놓고 비교해보니 고려의 두 명저에 대한 자부심을 느낀다. 다시금 천재들이 국가대표로 나서준 것에 안도하게 된다. 많이 늦었지만, 이인호 교수가 은사의 '사기교양강의'를 번역해 주신 것에 대하여도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