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국내 성매매 시장 규모를 약 30조 원으로 추산한다. 판결문과 범죄 통계 등을 토대로 성매매 시장 연간 매출액을 1조5,070억 원으로 파악했고, 여기에 성매매 단속률이 4~5%에 그친다는 점을 감안해 20~25를 곱한 수치다. 이런 거대 규모를 갖춘 성매매 시장을 없앨 수 있을까.
5일 한국일보와 만난 황유나 반성매매인권행동ㆍ성매매피해지원상담소 ‘이룸’ 소장은 “가능하다”고 단언한다. 단, “지금처럼 성매매 여성 종사자들에게만 죄를 묻는 방식으로는 성매매 시장에 작은 균열조차 낼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황 소장이 말하는 해법은 간단하지만 명확하다. 성매매 산업을 만들고 유지해 큰돈을 버는 이들을 찾아내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황 소장은 2013년부터 ‘청량리 588(동대문구 전농동 성매매 집결지)’의 여성 종사자들을 상담ㆍ지원했다. 청량리 집결지의 해체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며 성매매 영업 공간만 없앤다고 능사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장소와 형태만 바뀌어 성매매는 계속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가진 연구자, 활동가들과 함께 얼마 전 ‘불처벌’이라는 책을 냈다.
황 소장은 한국 성매매 산업의 진짜 ‘주체’는 여성 종사자가 아닌 국가와 알선자(포주), 건물주, 지주라고 주장했다.
국가는 1950년대부터 기지촌의 형성ㆍ운영 과정에 관여하는 등 성매매를 처벌하기는커녕 조장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최근 한국일보 보도(▶관련기사 [단독] 서울 마지막 성매매 집결지 '영등포'... "땅 주인은 국가였다")로 국가가 성매매 집결지 땅 일부를 제공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이 같은 풍토에서 성매매를 알선한 포주와 영업 공간을 제공한 건물주와 지주만 배를 불렸다.
그럼에도 국가의 처벌은 유독 여성 종사자를 향했다.
포주를 처벌하려 해도 ‘알선’의 해석이 엄격해 공들인 기획수사가 아니면 혐의 입증이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건물주ㆍ지주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반면 여성은 현장에서 증거물만 확보하면 되는 등 비교적 단속이 쉬워 표적이 됐다. 황 소장은 “여성은 성매매 사업을 유지하고 더 확대하고 싶어하는 알선자의 노력에 의해 포섭된 존재”라며 “성매매를 만드는 1차 행위자이지 원인 제공자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여성을 처벌하는 건 성매매 여성을 낙인찍는 ‘사회적 처벌’이라는 부작용도 낳는다. 그는 “처벌받은 여성은 계속 고립되고 불평등한 업주와 여성의 권력관계 역시 더욱 고착된다"고 지적했다.
황 소장은 재개발로 몇 년 뒤면 사라질 서울의 마지막 성매매 집결지 영등포에서만큼은 응당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그러나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 내 건물ㆍ토지 소유주 50명을 일괄 고발한 사건에 대해 경찰은 얼마 전 ‘3명 송치’라는 초라한 수사 결과를 내놔 찬물을 끼얹었다. 경찰은 소유주들이 자신의 건물이나 땅에서 이뤄지는 성매매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고 해명했다. 황 소장은 “집결지에서 수십 년간 임대료를 받은 이들이 성매매 사실을 몰랐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느냐”고 꼬집었다.
“영등포가 청량리 588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됩니다. 실질적으로 성매매 시장을 움직이고 굴리며 돈을 번 사람들을 처벌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