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술핵 재배치' 효과 있나…北 맞불 놓으려다 핵 확산 고삐 풀린다

입력
2022.10.1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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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전술핵'에 맞설 '전술핵 재배치' 논란 가열
①'핵에는 핵'...가장 확실한 대북 억지력 확보
②비핵화 실패 자인...동북아 핵 도미노 촉발
③美 전문가 "재래식 전력으로도 北 대응 충분"
④NPT 탈퇴 주장도...정부 "모든 가능성 검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술핵 운용부대'의 군사훈련을 지도했다고 북한이 11일 공개하면서 '전술핵 재배치' 논란이 거세다. 남한에 미군의 전술핵을 들여와 북한의 위협에 맞서자는 것이다. 1991년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30여 년 만에 깨는 격이다. "여러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11일 윤석열 대통령)", "결단의 순간이 왔다(12일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고 분위기를 잡으며 대통령실과 여당이 앞장서 여론을 떠보는 모양새다.


①전술핵 효과는… “가장 확실한 대북 억지력”

전술핵은 북한의 전술핵을 옭아맬 가장 확실한 대북 억지력에 속한다. 북한이 지난달 8일 '핵 선제사용'을 법으로 규정해 엄포를 놓았지만, 똑같은 핵보복을 받게 된다면 쉽사리 행동에 나서기 어렵다. 이른바 '상호 확증파괴'의 두려움이다. ‘핵 보유국 사이에는 전면전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국제정치의 금언이 한반도에 적용되는 셈이다.

북한과의 대화 시도가 그간 무위에 그친 만큼 우리가 확실한 공격 능력을 갖춰야 남북대화 채널이 열릴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실제 냉전이 한창이던 1980년대 동·서독 분단 상황에서 미국은 구소련이 동유럽에 배치한 핵무기에 맞서 서독에 핵무기를 배치해 맞불을 놨다. 이후 미·소가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체결하는 성과를 거뒀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의 경우, 미국은 핵무기가 없는 일부 회원국과 핵을 공유하고 있다. 러시아의 위협에 맞서 핵 억지력을 보증하기 위해서다. 평소 회원국 영토 안에 핵무기를 배치하고, 유사시 핵 제공국과 해당 국가가 동시에 승인하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

②”北 핵보유 용인”…동북아 핵 도미노 우려도

이 같은 '억지효과'에도 불구하고, 전술핵 재배치는 우려되는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우선 북한의 핵보유를 용인하는 격이다. 1991년 12월 우리 정부는 "우리나라의 어디에도 단 하나의 핵무기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며 북한을 향해 “아무런 조건 없이 국제사찰을 수락하고 핵 재처리 및 농축시설을 포기하라”고 촉구했다. 남한에 전술핵을 들여온다면 북한에 종용할 비핵화의 명분이 사라지게 된다.

동북아시아 ‘핵 도미노’ 현상을 초래할 수도 있다. 특히 일본이 핵무장에 나설 빌미를 제공하는 꼴이다. 일본이 ‘정상국가’를 기치로 평화헌법을 개정하려는 상황에서 비무장의 족쇄를 우리가 앞장서 풀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는 중국을 자극해 한반도 주변 군비증강이 기승을 부릴 수도 있다.


③한반도에 핵을 들여올 수는 있나… 美 전문가 “실익 적어”

현재 한국에는 핵이 없다. 따라서 미군의 전술핵을 들여와야 하는데, 이 또한 여의치 않다는 것이 미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11일(현지시간) 미국의소리(VOA)에 “미국 핵무기의 한국 재배치는 군사적 이점이 없다”고 단언했다. 클링너 연구원은 “미군은 1990년대에 한국에서 철수한 지상발사형 무기들을 더 이상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도 했다.

한미연합사 작전참모 출신인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 수호재단 선임연구원은 “미국과 한국은 북한 내부 어떤 곳에서든 북한군을 파괴할 재래식 역량이 있다”면서 “북한과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전술핵은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반대 의견도 있다. 수미 테리 윌슨센터 아시아 국장은 VOA에 “나토식 핵공유나 잠재적인 전술핵 재배치 등 모든 선택지를 검토해야 한다”며 “장단점을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이 최근 미사일 시험을 통해 전술 핵무기 역량을 높이고 '핵무력 법제화'로 선제 핵공격의 ‘문턱’을 상당히 낮췄다면서 “한국이 정상국가로서 모든 선택지를 고려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④한술 더 뜬 과격한 메시지도… “NPT 탈퇴, 독자 핵무장해야”

한국이 전술핵 재배치를 넘어 자체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북한이 핵무력 고도화를 구체적으로 천명한 이후 미국에서 한국의 핵무장을 수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큰 힘을 얻고 있다”며 “북한이 제7차 핵실험을 강행하면 한국은 생존과 안보를 위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할 수밖에 없다고 선언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술핵 재배치에 대해 정부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한반도 비핵화라는 큰 틀 안에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것이 정부 당국자의 설명이다. 북핵 위협을 억제하기 위해 전술핵 재배치가 아닌 한미일 3국 협력을 공고화하는 방안도 제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진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