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기반으로 한 반도체 생산업체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 상무부로부터 대(對)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 조치에서 1년 유예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유예기간 이후에도 승인 조치가 인정될지는 불확실하다. 앞서 미국 상무부가 지난 7일 발표한 규제는 첨단 반도체 생산 설비를 중국 내로 들이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중국 내 반도체 생산공장을 보유하고 있는 양사에도 부담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13일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1년 이후 중국 내 반도체 공장에 첨단장비를 반입하려면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승인을 해 주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미국의 입장 변화를 기대하기보다는 중국 내 공장 설비를 활용해 낮은 수준의 반도체를 생산하고 중국 시장을 공략하는 전략을 취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다만 그렇다고 중국 공장을 없애거나, 공장을 미국으로 옮길 필요는 없다고 봤다. "전 세계 반도체 수요의 60%가 아시아에서 발생한다. 미국이 보조금을 준다고 공장을 미국으로 옮길 것이 아니라 수요 중심으로 공장을 짓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전 소장은 미국의 반도체 관련 입법 등 정책이 중국 견제는 명분일 뿐, 근본적으론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산업을 겨냥해 '리쇼어링(자국으로 회귀)'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미국이 중국 내 최첨단 반도체 생산만 도입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이 18나노(㎚, 10억분의 1m) 이하 반도체, 14나노 이하 메모리 등 일정 수준 이상의 기술만 도입하지 못하도록 기준을 세우고 있다"면서 "1류나 2류 제품을 도입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이 이런 길을 택한 이유는 반도체가 군사기술에 활용되고 더 나아가 기술 패권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전 소장은 "10년 후에 항공모함과 우주선, 미사일과 장갑차에 넌-US(미국산이 아닌) 반도체가 장착돼 굴러가는 위험을 막기 위한 것이 가장 큰 의미"라면서 "실질적으로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인식을 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필수자원인 데이터를 만드는 것 또한 결국 반도체기 때문에 반도체의 자국 내 공급망 유지는 미래 산업의 패권에도 직결된다. 그는 "일본의 사례를 깊이 봐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 "1986년부터 세 번에 걸친 미·일 반도체협정을 거쳐서 일본의 메모리업체가 다 없어졌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전 소장은 '미중 반도체 경쟁' 구도에서 한국이 두 나라의 '경제 보복'에 대한 두려움을 과하게 느낄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현재로서는 기술 수준은 우리가 미국(7나노)이나 중국(14나노)보다 앞서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상대가 원하는 걸 가지고 있으면 떨 필요가 없다"면서 "적어도 3∼5년에서 미국이나 중국의 기업이 한국을 추월할 가능성은 없다. 애플이나 중국의 전자 업체들이 메모리를 못 구했을 때 오히려 경쟁력에 손실을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미국의 반도체 생산업체인 인텔이 최근 파운드리 재건을 선언한 것을 눈여겨봐야 한다면서 기술 부문에서 미국 기업의 추격과 정부의 대대적 지원은 경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 소장은 삼성전자가 지난 3일 파운드리 포럼에서 2027년 1.4나노 공정 도입을 예고한 것에 주목하면서 "우리의 생존을 유지하는 방법은 경쟁국가의 기술 수준을 제한하는 게 아니라 더 첨단의 기술을 앞으로 당겨버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