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책임진다고 하더니 이렇게 뒤통수를 치나요."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국공립 어린이집 관련 예산이 삭감된다는 소식에 전국의 엄마 아빠들이 제대로 뿔이 났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세종시 어린이집을 현장 방문해 "국가의 보육 책임"을 강조했던 터라, 부모들은 배신감마저 호소하고 있다.
11일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들이 이용하는 맘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국공립 어린이집 예산 삭감 뉴스를 공유하며, 분개하는 글들이 속속 올라왔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분석에 따르면, 내년도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예산은 491억7,000만 원으로 전년 대비 19.3%(117억3,300만 원) 삭감됐다.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예산이 600억 원 밑으로 떨어진 건 5년 만에 처음이다. ( ▶[단독] 윤 대통령 '보육 책임' 말하고선… 국공립 어린이집 예산은 19% 삭감)
복지부는 내년도 국공립어린이집 예산 삭감 보도가 나오자, 설명 자료를 내고 적극 해명에 나섰다. △국공립어린이집 신규 건립시 배정되는 예산 편성 방식이 변경되고 △어린이집 리모델링 지원 단가가 높지 않아 총액 자체가 줄었다는 설명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예산 집행 효율성을 도모하다 보니 전체 예산이 감소했지만, 국공립어린이집 확충 의지는 변함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복지부가 밝힌 내년도 확충되는 국공립어린이집은 540개소로, 올해 확충된 552개소에 비해 다소 줄었다.
보육 현장에선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정치하는엄마들의 박민아 대표는 지난 10일 MBC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양육자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건 사각지대 없이, 양질의 돌봄을 받을 수 있는 국공립 어린이집의 확충"이라며 "아동 대 교사 비율을 낮추고, 간식비를 인상해서 질 좋은 먹거리를 제공하고, 노후된 시설을 보수하는 등 보육 환경을 개선시킬 일이 굉장히 많은데 예산 확충은커녕 축소라니 말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동수가 줄었다고 해서 아이들의 보육 환경을 나몰라라하는 게 국가의 책무냐는 반문이다.
부모들은 이번 국공립 어린이집 예산 삭감이 '공공양육'에서 '가정양육'으로 보육정책 기조 전환을 예고하는 신호탄 아니냐며 의구심을 품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국정과제로 선정해 내년 처음 시행하는 '부모급여'(내년부터 만 0·1세 아동에게 각각 70만 원, 35만 원, 2024년부터 각각 100만 원, 50만 원 지급)가 대표적이다. 복지부는 영아수당을 확대한 부모급여 사업에만 약 1조6,000억 원을 쏟아붓겠다고 밝혔다. 지난해(영아수당)보다 366% 증액된 규모다.
윤 대통령이 어린이집 현장방문 당시 "(두 살도 안 되는) 어린 영유아는 집에만 있는 줄 알았다"고 발언한 걸 두고 조규홍 복지부 장관이 "가정양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지난 5일 국정감사)이란 해명도 뭇매를 맞았다.
맞벌이 부부들의 위기감은 더욱 크다. "부모급여 얼마 쥐여주고, 어린이집 예산은 줄이고 결국 집에서 아이 키우라는 건데 맞벌이들은 어쩌라는 거냐", "가정양육 좋다. 그런데 아이 키우다 경력단절된 여성들은 언제 사회로 다시 나갈 수 있나요" 등 하소연 섞인 성토가 줄을 잇고 있다.
삭감 논란이 불거진 돌봄 관련 예산은 이뿐 아니다. 정부가 초등학생이나 임산부에게 국산 농산물 등을 지원하기 위한 예산을 전액 삭감하고, 저체중과 조산아 같은 미숙아에 대한 의료비 지원을 전년 대비 42.9%나 줄인 것을 두고도 반발이 거세다.
박민아 대표는 "영유아 돌봄을 가정에서 해결해야 하는 것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윤 대통령의 인식에 많은 부모들이 실망감을 느꼈다"며 "윤석열 정부가 내놓는 보육정책들 역시 과연 양육자들이 신뢰하고 따를 수 있을지 굉장히 의구심이 든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대변인은 “2025년까지 2,750여 개소의 국공립 어린이집을 확충한다는 계획을 차질 없이 추진하고 있다”며 “관련 예산은 실질적으로 삭감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부모급여에 대해서도 “부모의 양육 비용 부담을 낮추고자 국가와 사회가 그 비용의 일부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며 “부모급여를 수령한다고 국공립 어린이집 등의 이용이 어려워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