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이 어색하진 않지만 여럿이 먹는 둥근 밥상이 그리운 날이 있다. 앞집 윗집 모르고 사는 게 피차 편하다 싶다가도 고독사 기사를 접할 때면 너무 삭막한 사회가 아닌가 하는 걱정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 속 후계동 사람들(손님과 주인이 따로 없는 술집에 이웃들이 아무 때나 모여 소소한 일상을 나누며 살아간다)을 판타지라고 비꼬면서도 동경하게 되는 이중적 마음과 같은 맥락일 테다.
2019년부터 지난해 초까지 네이버웹툰에 연재된 작가 아르몽의 '정순애 식당'은 이런 맥락에서 '따뜻한 판타지 웹툰'으로 분류할 수 있다. 평범한 동네 백반집 '정순愛(애) 식당'의 위층 옥탑방에 머물게 된 주인공 '정순'이 동네 이웃과 서툴게 관계를 쌓으며 자신의 아픔을 치유해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연애물이면서 동시에 인물들의 성장을 보여주는 매력으로 인기를 얻어 총 5권의 단행본으로도 발간됐다.
웹툰 '정순애 식당'은 작품 전반에 잔잔한 온기가 도는 게 가장 큰 매력이다. 사고로 연인을 잃은 회사원 '정순'은 그 죄책감으로 미각도 잃었다. 곧 생의 욕구가 사라졌다는 의미다. 그런 '정순'이 우연히 은하수 골목 노포인 '정순애 식당'에서 밥 한 끼를 먹고 맛을 느끼게 된다. 오랜만에 살아난 미각에 그는 좋아하지 않고 오히려 두려워한다. 연인의 사망 사고에 죄책감을 안고 지내던 주인공은 '아직 괜찮아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
"사랑을 듬뿍 담아내는 게 비법이지." 식당 주인 '순애'가 말한 음식 비법은 이런 주인공을 깨우는 한마디다. 음식에 뭘 넣었냐고 따지듯 묻는 주인공에게 답한 이 대사는 농담 같지만 우문현답처럼도 느껴진다. 음식에 대한 이런 철학이 작품의 온기를 채운다. 음식을 매개로 한 서로에 대한 관심이 주인공에게 생의 의지를 다시 갖게 한다.
이후 식당 위 옥탑방에 살며 식당 일을 돕는 주인공은 은하수 골목 주민으로 물들어 간다. 자신을 "주변 사람들을 구렁텅이로 끌어들이는 불행 덩어리"라 생각하며 "선을 긋는 것"을 사회생활 신조로 여겼던 그가 마을 탁구 경기에 참가하고 배추밭까지 가서 일손을 거들며 김장을 함께 하는 등 "사람 냄새가 나는 곳"에서 서서히 상처를 치유해 가는 모습은 독자도 훈기를 느끼게 한다.
각자의 아픔을 안은 인물들이 서로 보듬고 성장하는 과정도 감동적이다. 주인공은 넉살 좋은 동네 꼬마 '지후'와 꽃놀이를 갔다가 자신을 닮은 '지후'의 상처를 알게 된다. 목마를 탄 '지후'가 부모님과 함께 나온 아이들을 보고 눈물샘이 터지면서다. "저렇게 간장독 빠진 듯이 울어대면 정말 어쩔 바를 모르겠다"며 속상해하는 '지후' 할아버지의 얘기를 듣고, 주인공은 자신처럼 부모 없는 아픔을 안은 꼬마에게 한걸음 더 다가간다.
동시에 '정순' 역시 할아버지로부터 "자네도 무슨 사정이 있는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비슷하다고 느꼈네. 남겨진 사람들은 슬퍼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라며 위로의 말을 듣는다. 이 외에도 할머니와 함께 식당을 운영하는 '사랑'이 꿈을 찾아가는 과정 등도 생각할 거리를 준다.
'고품질' 음식 그림을 보는 맛도 쏠쏠하다. 음식을 매개로 서사가 이어지는 만큼 공을 들인 음식 그림들이 침샘을 자극한다. 주로 된장찌개, 콩나물국밥, 제육볶음, 비빔밥 등 골목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친근한 메뉴들이다. 예쁜 인물 그림체 등은 다분히 순정만화풍이지만 감자 한 알, 계란 노른자 하나의 부피감까지 표현한 작화법은 요리·음식 영상을 보는 듯한 재미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