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제주시 도심에 자리 잡은 A복합리조트. 지난 7일부터 시작된 한글날 연휴 기간 1,100개의 객실 예약이 모두 마감됐다. 1박 당 가장 싼 객실이 40만 원을 넘길 정도로 5성급 호텔을 능가하는 수준이지만, 제주 바다가 보이는 객실은 예약이 일찌감치 끝났다. 뒤늦게 예약에 나선 관광객들은 도심 쪽 객실이라도 "예약을 했다"는 사실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A리조트의 예약 경쟁은 비단 연휴 때만이 아니다. 코로나19 거리두기가 완화된 올해 상반기 이후 하루 평균 1,000개에 육박하는 객실이 꽉 찬다. A복합리조트 관계자는 10일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을 가지 못한 신혼여행 관광객은 물론 20∼30대 젊은 층 이용도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의 고급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코로나19로 확산된 비대면 문화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코로나19 초기만 해도 고급 리조트와 특급호텔 등은 전반적인 수요 감소 속에 각종 할인 이벤트까지 짜냈지만 관광객 유치에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1박에 100만 원 넘는 고가의 리조트도 최소 한두 달 전에 예약을 해야만 할 정도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제주 여행 고급화 바람을 이끄는 핵심은 독채 풀빌라들이다. 외부와 완전히 차단돼 사생활이 보장되면서도 동남아 어느 관광지 못지않은 풍경까지 제공하기 때문이다. 최고급형 풀빌라는 1박 가격이 200만 원대를 육박하지만, 어린 자녀를 둔 가족들과 신혼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많아 연휴나 주말에는 예약이 하늘에 있는 별따기만큼 어렵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최근 몇 년간 여행 추세로 부상한 소위 ‘차박’ 여행도 고급화 바람에 가세하고 있다. 내륙의 캠핑족들이 제주도로 활동 반경을 넓히면서 캠핑카 대여업체들이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고급 캠핑카 대여료는 24시간 기준 50~65만 원으로, 특급호텔 숙박료 못지않게 비싸지만 예약을 해도 대여가 쉽지 않다. 제주에서 캠핑카를 이용했다는 A씨는 "캠핑카 대여 가능 날짜에 제주도 여행 일정을 맞췄다"고 말했다. 실제 제주관광공사 조사에서도 최근 ‘캠핑카’와 ‘카라반’ 등의 연관어 검색이 급증하고 있다. 정근오 제주관광공사 프로젝트매니저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개별관광 중심으로 여행패턴이 바뀌고, 소비경향이 높은 관광객들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했다.
제주 여행의 고급화 바람은 관광객들의 씀씀이에서도 드러난다. 제주관광공사가 발표한 '2021년 제주도 방문관광객 실태조사’ 결과, 지난해 내국인 관광객 1인당 평균 지출비용은 60만626원으로, 전년도 50만6,344원에 비해 20%가량 증가했다. 또 100만 원 이상 지출 비중도 2배 정도 늘었다. 그 결과 지난해 전체 제주관광수입은 6조3,402억 원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8년 수준까지 회복됐다. 이 중 내국인 관광객 지출은 2020년에 비해 1조5,485억 원(36.7%)이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로 지난해 제주도 관광객이 이전보다 크게 줄어 회복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관광객 1인당 지출이 크게 늘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제주도관광협회 관계자는 "코로나19가 제주관광의 지형을 새롭게 바꿔 놓고 있다"며 "특히 비싼 비용을 내고 질 높은 관광을 즐기려는 여행 문화가 급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