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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에도 재택근무가 일반적인 업무 형태로 굳을 것인가.'
팬데믹 내내 많은 이들이 통근의 시대가 저물고 재택·원격 근무의 막이 오를지 토론했다. 그만큼 코로나19는 대다수의 일과 직장에 대한 생각을 획기적으로 바꾸었다.
코로나 확산 위기가 사라지면서 대다수 직장인은 사무실로 복귀했지만, 참신한 업무 방식을 발굴하고 탐색하는 조직 혹은 개인도 적지 않다. 디지털 장비를 갖춘 채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을 하는 '디지털 노마드(유목민형 노동자)'는 구어 취급을 받고 있다. 코로나 유행 동안 인구가 밀집한 수도권을 떠나 한적한 휴가지에 머물면서 일을 병행하는 '워케이션(work+vacation)'이라는 개념도 생겨났다.
특히 이런 움직임은 유연하고 자율적인 분위기의 정보기술(IT) 업계를 시작으로 확산하고 있다. 네이버는 지난 7월 워케이션 제도 도입을 발표했는데, 직원들은 추첨을 통해 강원도 춘천에서 최장 4박 5일 근무를 할 수 있게 됐다. '배달의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도 내년부터 근무지 자율선택제를 도입한다. 괌, 몰디브 등 해외에서 근무하는 것도 가능하다.
강원 강릉시는 국내 워케이션의 성지로 부상하는 지역 중 하나다. 2017년 강릉선 KTX(서울~강릉)가 개통한 이후 수도권에서 2시간이면 닿는 데다, 동해와 인접한 곳에 관광자원이 갖춰져 있어 여행과 업무를 동시에 즐기기 제격이어서다.
강릉시와 강릉관광개발공사는 지난 7일부터 9일까지 강릉시 연곡면 연곡해변솔향기캠핑장에서 '워케이션 페스티벌'을 열었다.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일하는 노마드족들은 와이파이가 제공되는 잔디 위에 앉아 업무를 보고, 이따금 해변에서 요가 수업을 들으며 몸과 마음을 살폈다. 허스펙티브는 2박 3일 행사 가운데 '새로운 일의 방식을 모색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담았다.
'노마드허(Nomadher)'는 글로벌 여성 여행자 커뮤니티를 표방하는 스타트업이다. 172개국 1만5,000여 명 사용자가 모인 애플리케이션(앱)에서 여성 여행자들은 여행에 대한 영감과 이야기, 팁과 정보 등을 나눈다. 신분증과 사진 인증을 거쳐 여성만 가입할 수 있는 앱에서 여행자들은 낯선 곳에서도 비교적 안전하게 여성 동행을 만날 수 있다.
'노마드(nomad)'와 '여성(her)'을 합친 회사 이름에서 가늠할 수 있듯이 이곳 직원들은 '디지털 노마드'로 업무를 한다. 회사는 프랑스 파리에 거점을 두고 있는데, 배소연(34) 노마드허 콘텐츠 개발 헤드는 한국에서 업무를 처리한다. 여성들의 유랑하는 삶을 응원하는 배씨 자신도 1년 남짓 유목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8일 연단에 오른 그는 '나를 잃지 않고 디지털 노마드로 일하는 법'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꺼냈다.
배씨가 강조하는 디지털 노마드 생활의 첫 단추는 '자신의 일을 정의 내리기'. 다국적 팀원이 소규모로 모인 글로벌 스타트업에서 '이 일 하라, 저 일 하라' 지시하는 사람은 없다. 직접 방향을 정하고 주도해야만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배씨는 "겉으로 보기에는 원격 근무가 자유로워 좋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삶을 통제하면서 주체적으로 일하는 데 책임이 따른다"고 말했다.
"그냥 하던대로 해." 권위적인 조직 문화의 선박 회사에서 7년 이상 일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단순히 시키는 일을 잘 따르는 것이 조직 입장에서는 필요할 수 있지만, 배씨는 '현상 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편한 회사 생활일 수는 있지만, 개인의 성장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도 봤다.
시키는 일만 열심히 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계속해서 스스로 질문을 던진다. '왜 이렇게 해야 하지?' '왜 이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지?' 질문이 꼬리를 물수록 일을 더 잘하기 위한 치열한 고민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①내 일을 직접 정의내린 후에 ②일을 더 잘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고 ③그것을 삶 속에서 조화롭게 운용하기 위해 시간과 장소를 자율적으로 조직하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자신을 잃지 않으며 디지털 노마드로 사는 법'의 핵심이다.
"디지털 노마드로 살면 '지옥철'에 체력을 빼앗기지 않아도 되고, 기본 3시간 걸리는 출퇴근 시간을 아낄 수 있죠. 아낀 시간에 '내가 잘 하고 있나?' '이게 최선이 맞나?' 끊임없이 질문해요. 디지털 노마드로 살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게 됐죠."
원격 근무를 하는 디지털 노마드는 얼마나 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일과 여행, 그리고 삶을 이어갈까. 지난 5월 포르투갈에서 한 달 반 디지털 노마드 생활을 하며, 배씨는 "집에서 일하는 걸 선호한다"는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
"노마드라고 꼭 해외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서울 시내 트렌디한 카페에서 업무를 보기도 하고, 틈 날 때 전시를 보며 영감을 얻죠. '나인 투 식스(9 to 6)'에 구애받지 않고 오전 2시간, 오후 3시간, 저녁 3시간 이런 식으로 시간을 분배해서 일하기도 하고요. 사무실과 업무 시간에 국한되지 않고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식을 주체적으로 찾아가는 것이 노마드식 업무 방식이라 생각해요."
"안녕하세요. 저는 '요즘 것들의 사생활(요즘사)'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이자, 팟캐스터이자, 책을 쓰는 작가이기도 한 이혜민입니다. 구백킬로미터라는 스튜디오도 운영하고 있고요."
MZ세대 인터뷰 채널 '요즘사' 운영자 이혜민(35)씨는 자신을 소개하며 여러 개의 직업을 나열했다. 하나로 특정할 수 없는 '직업' 가운데 이씨는 자신이 하는 '일'의 핵심을 이렇게 추려냈다. "이야기 속에서 길을 찾는 사람인 '스토리 파인더'라 설명하고 싶어요."
구독자 5만5,000여 명을 둔 유튜브 채널 '요즘사'는 '세상이 말하는 정답 말고 나다운 삶의 레퍼런스'라는 구호를 토대로, 청개구리 기질을 갖고 자신의 길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이들의 삶을 기록한다. 2016년 직장을 그만두고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것으로 결혼식을 대신한 '청개구리' 이씨 부부는 재취업 대신 다른 길을 만들어 가는 MZ세대 인터뷰를 업으로 삼기로 했고, 5년 동안 250여 명의 이야기를 영상과 책으로 담았다.
요즘사가 그간 만난 이들의 일은 좀처럼 한 단어로 정의하기 힘들다. 불안정하다는 프리랜서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개인이 팀이나 회사를 조직해 일감을 따내는 방식으로 자유와 안정성을 모두 꾀하는 '프리에이전트', 월급의 10%씩 모아 공동으로 와인바를 차리는 등 각자가 '생업' 외에 하고 싶었던 꿈을 십시일반으로 현실화하는 열 명의 친구들, 각종 N잡(여러 개의 직업)과 사이드 프로젝트(부업)에 몰입하는 이들 등. 기존의 직업관으로 쉽게 분류되지도, 설명되지도 않는다.
물론 세상의 기준으로는 이씨의 일도 보편적인 노동 형태는 아닐 터. 지난해 이씨는 함께 채널을 운영하는 남편과 강원도에서 한 달 동안 지내면서 8개 도시를 이동하면서 일했다. 올해는 제주도와 태국 치앙마이에서 보름씩 지냈다. 정말로 이동을 하면서 일감을 얻어 먹고사는 게 가능한지 알아보기 위한 실험이었다.
"생활 환경이 고정되고 만나는 사람만 만나다 보면 새로운 일이 생겨나는 데 한계가 있어요. 여러 도시를 이동하면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일로 연결되기 위해 '노마드 워커스 클럽'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죠.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협업 제안을 받거나 일감을 얻고, 후원을 받았어요. 실험을 통해 알게 됐죠.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얼마든지 업무를 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자신의 삶을 찾아갈 수 있다는 걸요."
그렇다면 세상이 규정한 방식이 아닌 다른 형태로 업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참고할 만한 태도가 있을까. 이씨는 모두 각자의 선택지가 있을 뿐 정답은 없다는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워라블(Work-Life Blending·일과 삶을 융합하다)'이라는 단어를 제시했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하는 사람도 있고, 여러 직업을 동시에 가진 사람도 있는 등 일의 형태가 무척 다양해지는 세상에서 '워라밸(Work-Life Balance)'이라는 개념은 잘 맞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일과 삶을 구분 짓다 보니 '업무 시간 안에 다 끝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겨, 오히려 영감이 왔을 때 타이밍을 놓치곤 했죠. 일을 하다가 놀 수도 있고, 요가를 하다가 다시 일을 하는 것처럼 자유롭게 일과 삶을 섞고 통합하는 '워라블'이 누군가에게는 더 맞는 방식이 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