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고구마 행상이 등장하는 겨울철마다 전국민 간식거리로 소비가 늘어나는 고구마는 전국에서 재배된다. 기후와 토양에 구애 받지 않고 잘 자라는 뿌리채소이기 때문이다. 소비도 활발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고구마(서류) 소비량은 2.9㎏으로 같은 양곡(양식으로 사용되는 곡식)류 중에서도 밀가루(1.1㎏)나 콩류(1.7㎏) 등에 비해 월등히 높다. 지금은 전국 어디서나 쉽게 구해 먹는 작물이지만, ‘원조 고구마’는 강원도에 따로 있다.
조선 영조 때인 1763년 10월 조선통신사로 일본 대마도를 방문했던 조엄이 종자를 얻어 국내로 들여온 게 고구마의 시초다.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는 데다 맛과 영양이 뛰어난 고구마는 빠르게 전파돼 조선 후기 굶주린 백성의 배를 채워주는 일등공신이 됐다. 영조는 이에 고구마로 가난한 백성을 도운 조엄의 공을 기려 강원 원주 일대의 땅을 하사했다. 조엄의 묘역과 기념관이 있는 원주시도 ‘조엄 고구마’를 지역 특산물로 선정했다.
지난달 26일 수확이 한창인 원주를 찾은 것도 원조 고구마 재배 현장을 직접 보기 위함이었다. 굳이 원조를 따지지 않아도 원주는 고구마를 재배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췄다. 치악산이 병풍처럼 둘러싼 해발 400m 준고랭지 지역으로, 일교차가 커 고구마 품질이 우수하다. 다른 지역 고구마보다 단 맛이 강하고, 육질이 단단한 원주 고구마는 속살까지 쫀득하다. 꿀고구마를 비롯해 호박고구마, 밤고구마, 자황고구마 등 품종도 다양하다. 천혜의 자연환경 덕에 원주에서 생산되는 고구마는 연간 총 5,800톤(2020년 기준)으로 강원도 전체 생산량(7,850톤)의 74%를 차지한다.
원주에서 8년째 고구마를 재배해온 조정치 ‘더착한농장’ 대표는 “고구마는 전국 어디서나 자라지만, 토양 상태나 배수, 품종 등에 따라 맛은 천차만별”이라며 “강수량이 적으면 당도가 높아지는데 최근에는 촉촉하면서도 단 맛이 강한 꿀고구마(베니하루까) 품종이 인기를 끈다”고 전했다. 일본에서 개발된 품종인 꿀고구마는 2012년 국내에 도입된 후 시장 점유율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고구마를 원물(原物)로만 먹는 시대는 지났다. 농가에선 고구마를 활용한 다양한 가공품을 만들어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다. 크기와 모양이 일정치 않아 상품성이 떨어지는 단점을 보완하고, 저장이 까다로운 한계를 극복해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조 대표도 연간 50톤의 고구마를 생산해 절반은 고구마말랭이를 만든다. 그는 “고구마는 생산량이 많아 부가가치가 높지 않다”며 “고구마를 좀 더 다양하고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고구마말랭이를 선보이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간 손이 많이 가는 게 아니다. 먼저 직접 재배한 무농약 햇고구마를 2주간 숙성시킨다. 숙성 고구마를 다시 세척한 후 오븐에 넣고 굽는다. 구운 고구마의 껍질을 벗긴 뒤, 먹기 좋은 크기로 일일이 직접 자른다. 그리고 고구마 조각을 2, 3차례에 걸쳐 적정 온도에서 건조시킨다. 이 과정만 꼬박 이틀이 걸린다. 이렇게 고구마말랭이 200g을 만드는 데 필요한 고구마는 1㎏이다. 고구마 가격이 ㎏당 약 5,000원이란 점을 감안하면 고구마말랭이(200g 기준) 가격은 1만 원으로 2배 비싸다. 조 대표는 “고구마말랭이는 식품첨가물을 넣지 않고 맛과 식감이 좋아 건강간식으로 각광 받고 있다”며 “부가가치도 높고 유통기간도 길어 농가 소득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원주시도 고구마 소비 촉진을 위해 적극 나섰다. 시는 농촌진흥청에서 주관하는 ‘2022 특산자원 융·복합 기술지원’ 사업에 고구마를 신청해 선정됐다. 시와 사업을 함께 하는 사회적기업 ‘온세까세로’는 지역 농가로부터 크기와 모양 때문에 상품화하기 힘든 '못난이 고구마' 10톤을 구매해 빵과 브리또(소를 넣고 둥글게 만 멕시코식 밀가루 부침개) 등 다양한 지역 상품을 개발했다. 해당 제품은 이달 22~23일 원주시 지정면 간현관광지에서 개최되는 ‘제1회 치악산 고구마축제’에서 맛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