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서 산 비트코인 국내서 비싸게 팔아… 중국·일본으로 1조 빠져나갔다

입력
2022.10.06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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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명 구속기소…시중은행 지점장도 포함 
유령법인 무역거래대금으로 속여 송금 
검찰 "해외 도주 공범, 자금 종착지 추적"

국내 가상화폐 시세가 해외보다 높은 점을 노리고 중국과 일본에서 산 비트코인을 국내에서 판 뒤 1조 원대 자금을 해외로 빼돌린 불법외화송금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다. 불법송금 일당들은 10개월 동안 7,000억 원의 비트코인을 국내에서 팔아 수백억 원의 시세차익을 남겼고, 이 돈을 해외로 보내기 위해 시중은행 지점장까지 범행에 끌어들였다. 검찰은 중국과 일본으로 도피한 공범들을 추적하는 한편, 가상화폐를 매입한 해외 자금의 출처도 조사하고 있다.

대구지검 반부패수사부(부장 이일규)는 6일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A씨 등 8명을 구속기소하고 1명을 불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A씨는 일본에 체류 중인 한국인 B씨 등과 공모해 지난해 9월부터 올해 6월까지 금융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3,400억 원 상당의 가상화폐를 허가 없이 매매한 혐의(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위반)를 받고 있다. 금과 반도체 칩 등을 수입한 것처럼 허위증빙자료를 은행에 제출해 304회에 걸쳐 4,957억 원 상당을 해외로 송금한 혐의(외국환거래법 위반)도 받고 있다.

A씨 등은 일본 거래소에서 매입한 비트코인을 전자지갑에 넣어 옮긴 뒤, 국내 거래소가 해외보다 비싼 ‘김치프리미엄’을 이용해 270억 원의 차익을 얻었으며, 이 중 223억 원을 일본에 송금했다. 나머지 수익 47억 원은 외제차와 명품 등을 구입하고 고가의 부동산과 고급 리조트 회원권 구입 등에 쓴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유학생활을 했고 경제학을 전공해, 외환거래와 가상자산거래에 해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C씨는 중국계 한국인 또는 중국인과 공모해 중국 거래소에서 매입한 비트코인을 국내에서 팔아 시세차익을 얻었다. C씨 등은 지난해 9월부터 올해 6월까지 금융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영업 목적으로 3,500억 원 상당의 가상화폐를 매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C씨 등은 유령법인을 설립해 전자부품 등을 수입한 것처럼 은행에 허위 증빙자료를 제출한 뒤 281회에 걸쳐 4,391억 원을 송금한 혐의도 있다.

우리은행 전 지점장 E씨도 재판에 넘겨졌다. E씨는 A씨 등 일본 가상화폐 조직과 C씨 등 중국 가상화폐 조직의 범죄가 수월히 진행될 수 있도록 도우미 역할을 했다. E씨는 이들의 거래가 은행 자체 감시시스템인 ‘의심거래 경고(STR Alert)’에 걸렸는데도 본점에 보고하지 않고 A씨 등에 알려줬다. E씨가 지점장으로 근무한 지점은 해외 송금 수수료 등 21억 원을 챙겼다. E씨는 현금 2,400만 원과 상품권 100만 원도 수수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른바 ‘김치프리미엄’을 노린 일본·중국 세력과 연계한 이들이 조직적으로 가상화폐를 한국에서 투매하고 이익금을 해외로 빼돌린 범행 구조를 최초로 적발해 처벌했다”며 “시중은행을 통해 1년여 동안 수천억 원의 외화가 불법송금됐음에도, 아무 제지도 받지 않는 등 외화 송금 시스템에 대한 면밀한 점검이 필요함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A씨 등의 추가 불법송금 여부와 송금된 돈의 종착지를 계속 수사하고, 해외에 머물고 있는 공범들은 외국 법집행기관과 공조해 범죄인 인도절차를 거쳐 국내로 송환하겠다"고 강조했다.


대구= 김정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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